좋은 데, 싫어!
이게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절증후군'의 시작입니다. 재미있게도 이런 현상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와 몸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우리 뇌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에 '도파민'이라는 행복 물질이 분비되는 동시에, 준비해야 할 일들과 예상되는 갈등 때문에 편도체가 빠르게 활성화되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꿈틀대기 시작하죠. 말 그대로 복잡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겁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양가감정 (Ambivalence)'이라고 부릅니다. "좋은데, 싫어!"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인 접근 동기와 피하고 싶은 마음인 회피 동기 가 동시에 작용하는 겁니다.
자, 이제 명절 당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각종 질문 폭격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승진했어?"
"애는 언제 가질 거야?"
"살이 좀 쪘네?"
한숨만 나오게 하는 이런 질문들은 우리의 의사 결정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엽을 바쁘게 만듭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하는 고민 때문이 머리를 꼭 터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때 스트레스로 인해 분비된 코르티솔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불쑥 내뱉게 할 수도 있어요. 이걸 Emotional hijacking이라 하는데요, 직역하면 “감정적 납치”이지만 의역하면 “감정에 휘둘림” 이 더 자연스러울 듯합니다. 이렇게 휘둘리기 시작하면? 이성적인 나는 저 멀리, 어느 순간 욱 하며 안 해도 될 말 또는 행동을 쉽게 하게 됩니다.
여기에 명절 음식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우리 뇌는 즐거움을 느끼고 더 먹으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풍성한 명절 음식은 우리 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핑계를 대서는 안되지만, 이 뇌의 장난으로 쉽게 과식을 하게 되고, 결국 소화기 계통에 무리가 가면서 '명절 체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현상은 너무나 재미있지만, 막상 당사자는 힘든 결론을 맞이하는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뇌는 계속해서 음식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낸다는 겁니다. 이렇게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게 되는 현상을 쾌락적 섭식이라 합니다. 쾌락적 식욕은 주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며, 음식을 통해 잠시나마 쾌락과 위안을 얻으려는 목적이 있는데요, 이렇게 이어진 과식은 결국 소화 불량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연결됩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리고 피하고 싶지만 피해 지지 않는 신체적 물리적 고갈. 명절 내내 계속되는 가사 일과 대화는 우리의 에너지를 빠르게 고갈시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 고갈'이라고 부르는데요. 하루에 쓸 수 있는 의지력이 정해져 있고, 자동차 연료처럼 의지력도 그것을 쓰면 쓸수록 고갈 상태에 도달한다는 겁니다. 명절 동안 이 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면 결국 번아웃 상태에 빠지게 되고, 명절 동안의 불규칙한 생활은 우리의 바이오리듬도 망가뜨립니다. 이로 인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명절 후유증은 더욱 심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명절이 끝날 무렵엔 많은 분들이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지요.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는 명절, 어떻게 현명하게 명절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틈틈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잠깐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깊은 숨을 몇 번 쉬는 것만으로도 뇌가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간단한 활동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보드게임이나 가벼운 스트레칭 같은 것들이요. 이런 활동은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보세요. 이를 '마음 챙김 식사'라고 하는데, 음식의 맛, 향, 질감에 집중하면 과식도 막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어요. 이는 뇌의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자기 조절 능력을 높입니다.
넷째, 감사 일기 쓰기를 이 기간만큼은 해보세요. 매일 밤 가족들과 있었던 좋은 일 3가지를 적어보세요. 이는 뇌의 긍정적 편향을 강화하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합니다.
다섯째, 명절이 끝난 후엔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 피로가 쌓인 뇌와 몸을 다시 원상태로 돌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명절증후군은 분명 힘든 경험이지만, 사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 관계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더 잘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스트레스 상황이 우리를 더 강하고 탄력 있게 만들어 후천성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기도 합니다.
명절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아를 성찰하며, 감정 조절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심리학 실험장'이 아닐까요? 이번 명절에는 이런 관점으로 접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다가오는 명절, 약간의 긴장감이 든다고요? 괜찮아요. 그건 여러분의 뇌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이번 명절은 여러분만의 방식으로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