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Oct 27. 2024

생각의 굴레

생각은 생각일 뿐

지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나요? 걱정, 불안, 후회... 혹은 이 글을 읽으면서도 다른 생각이 떠오르진 않나요? 우리 마음은 실로 신기한 곳입니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만듭니다.


"내일 발표 망하면 어쩌지?"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귀에 익숙한 이 목소리들. 현대 심리학에서는 우리 뇌가 하루에 무려 6만 개가 넘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말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중 80%가 부정적인 내용이며, 95%는 전날 했던 생각의 반복이라는 것이죠. 마치 똑같은 음악을 반복 재생하는 라디오처럼, 마음은 비슷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이런 현상의 비밀은 인간 진화 과정에 있습니다. 인류가 아직 동굴에서 살던 시절, 뇌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위험을 감지하고 경계해야 했습니다. "저기 수풀 너머에 호랑이가 있을지도 몰라", "이 열매가 독이 있진 않을까?"와 같은 걱정과 불안이 조상들의 생명을 지켜준 것이죠.


문제는 현대 사회에 와서도 이 뇌가 여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호랑이 대신 "면접 탈락", 독이 든 열매 대신 "인간관계 실패"를 걱정하면서 말이죠. 한때는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이 특성이, 이제는 오히려 우리를 불필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뇌는 자동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실수하면 어쩌지?"

"다들 날 비웃을 거야."

"이번에 망하면 승진은 물 건너갔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마치 그것이 이미 현실이 된 것처럼 느끼며 불안해합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죠.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어쩌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 때문에 실제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 특히 수용전념치료(ACT)에서는 이를 '인지적 융합'이라고 부릅니다. 생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리는 현상이죠. 마치 영화를 보면서 그것이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완전히 몰입해 울고 웃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에 깊이 빠져들어 그것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맙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 바로 '인지적 탈융합'이라는 기술입니다. 이는 마치 구름을 보는 것처럼 생각을 관찰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구름이 떠가는 것을 보며 "저기 구름이 지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듯, "아, 지금 실패에 대한 걱정이 들었구나"라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순한 말장난 아니야? 라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 뇌의 구조와 기능이 변화한다는 사실이 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생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이를 반복적으로 실천할 때 뇌는 실제로 새로운 신경 회로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1. 생각 이름 붙이기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 "아, 지금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찾아왔구나"라고 바꿔보세요.


2. 감사일기 쓰기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날 있었던 작은 행복이나 감사한 일들을 적어보세요. 이는 부정적인 생각의 순환을 깨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호흡 명상하기

하루 5분이라도 좋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저 관찰해 보세요.


4. '그리고' 사용하기

"나는 불안해"를 "나는 불안하고, 지금 이 순간 안전하게 여기 있어"로 바꿔보세요.


5. 생각 크기 조절하기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그 생각을 아주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상상해 보세요. 또는 아주 작은 소리로 들리게 해 보세요.


이러한 실천들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점차 생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마치 운전을 배울 때처럼, 처음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점차 자연스러워지는 것이죠.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접근이 결코 생각을 없애거나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모든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를 기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슬픔,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들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때로는 이런 감정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선택의 자유입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생각이라는 강물 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에 주목할지,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것은 전부가 아닌 단지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현재 나의 생각은 내 일부이지만, 그것이 네 전부는 아니라는 것. 이 작은 깨달음이 삶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 생각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것들과 조금 다른 관계를 맺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당신은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더욱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르시시스트는 변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