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by 루나


큰 애, 둘째의 남자아이 장난감도 모자라 셋째인 딸의 장난감까지 더하니 집 안이 유치원이다.


위층 아래층 앞마당 뒷마당에 테트리스처럼 야무지게 들어찬 집 안 곳곳 아니 집 바깎 곳곳까지 청소를 하다 보면 욕과 한숨이 절로 난다.


여름방학 언제 끝나나.


장난감을 매일 치우는 걸 포기했다.

대신 아이와 아이의 장난감으로 놀기로 했다.


코비드와 시작된 임신과 출산,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하릴없이 부족했던 가정 경제에 휴직을 그만두고 다시 일을 나가야만 할 시점에 남편은 기가 막히게 친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내 삶 어디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족해진, 그래서 불행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될 때쯤 심장이 아프기 시작했다.



오른쪽 가슴 깊은 곳 어딘가를 칼을 맞았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까, 처음엔 몇 분, 어쩔 때 한 번씩 몇 분씩 지속되던 고통이 점점 자주 찾아오고 이유 없이 갑자기 숨이 너무 가빠져하던 일을 멈추는 일들이 점점 빈번하게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오해한 의사는 검사에 검사를 진행했고 일어나지도 않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들을 상상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의사는 산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판명했다.


내가?


사실 집착에 가까운 청소를 한다던지, 너무 급발진해 신경질을 낸다던지 등에 대해서 내가 조금 예민해진 건가 에 대한 고민을 잠깐 한 적이 있지만 첫째 둘째 낳았을 때도 안 걸린 산후 우울증을 예전보다 나아진 환경에 살고 있는 지금?




지난 몇 년 간 나는 좋은 엄마, 훌륭한 부인 역할병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고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는 청소와 집안일을 잠도 안 자가며 누구도 찬양하지 않는 엄마라는, 내가 가져보지 않은 존재가 내가 된 것에 대해 희열을 느낀 것 같다.



헌신적인 육아의 문제는 엄마의 정체성 분란이다.

나를 잃고 키워내는 아이들에게 느끼는 행복에 취해 내 꿈과 내 열정을 짓이기고 버무려 아이들을 키워내야 좋은 엄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나뿐일까.

조화롭게 나를 잃지 않고도 모든 것을 균형 있게 맞춰 살 순 없을까.


행복하게 부족한 것 없이 다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느껴진 고통에 알게 된 진실 속에 마주한 나는 불편했다.



나를 위한 시간,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나에 대한 관심, 놓고 살았던 창작의 열정과 필요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픈 몸에는 약이라도 있지만 아픈 마음에는 다른 처방이 필요치 않은가.


여하튼 약도 먹어보고 임신하며 꼬박 쉬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다시 시작하고 이유 없이 화장도 하고 삼백육십오일 집착하던 청소도, 아이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장난감을 치우던 집착 따위를 좀 내려놓았다.



날씨가 좋아지고 말 한마디 못 알아듣던 막내딸이 제법 말귀가 생기고 나를 위한 일들을 하나씩 조금씩 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심장이 아프던 것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내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이었나.

아빠와 새엄마와 남동생과 반지하 단칸방에 살던 때, 튀긴 통닭을 이주일에 한 번 저녁으로 시켜 먹던 것이 호화스럽다 여겼을 때, 동네에 금은방을 하던 친구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이층 집.


금은방 플러스, 시계 점포 집의 딸이던 친구 집엔 요샌 잘 보이지도 않는 새머리가 나와 시간을 알리던 커다란 스탠드형 초인종 시계가 거실에 있었는데 그 친구와 거실에서 놀던 중 한 번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새머리(무슨 새였는지 기억 안 남 주의 ㅋ)에 어찌나 놀랐던지.

나는 신기하거나 새로워 즐거웠다는 감정보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에 대한 낯설고 무서운 감정이 크게 들었던 어린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이제 곧 만 두 살이 되는 셋째, 딸.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큰 럭셔리 바비인형 하우스를 갖고 놀고 있는 딸의 뒷모습을 보다 울컥 눈물이 나왔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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