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With 아빠)

by 루나



2017년 가을 무렵 마침내, 2006년 한국을 떠나 12년 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셨었고 남편은 3주, 아이들과 나는 남편이 떠난 후 3주를 더 한국에 머무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9월 중순즈음이었나.

지금은 2022년 8월 말, 이 글은 내가 2016년에 쓴 '아빠'라는 에세이의 마침표 같은 글이다.




남편이 떠나고 그 다음 날, 청풍(본가)에 아이들을 데리고 할아버지와 가족들 몇명과 성묘를 하러 갔다.


충청북도 청풍.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 아빠의 고향,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고향.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어릴 적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청풍에 갈 때는 '울고 가는 박달재'가 왜 울고 가는 박달재인지를 이해할 것 만 같다. 지금이야 길이 너무 잘 나와있지만 팔십년대 말, 구십년대 초만 해도 청풍에 가거나 그곳에서 도심으로 나오는 길은 차 안에 벨트를 매고 있어도 마치 산 끝저머리를 두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가는 것 같았고 목숨이 위태로운 무엇마냥 가슴 졸이며 바깎이라도 쳐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씨꺼먼 절벽에 구토를 참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어 박달재를 끼고 가던 아빠의 고향 청풍은 일곱 여덟하던 나이의 어린 나에게 감히 울고 안갈래야 그럴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청풍이라면 멀미가 생각나 치가 떨렸다.

둘째 아들이 차 멀미가 좀 심한데 그러고 보면 나도 차 멀미가 참 심했지. 모 심은데 모 난다는 어른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할머니가 심히 웃으실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잘한게 없으니 묻히진 못하고 화장을 해 자신이 자란 청풍강에 뿌려지길 원하셨고 그렇게 되셨기 때문에 아빠의 혼이 어딘가 강하게 남겨져 있다면 그곳이기도 한 청풍.



선조들이 묻힌 무덤이 있는 선산에 많은 지분은 아빠가 사업한다고 팔아먹고 담보를 대 망해먹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은퇴하신 후 사시겠다고 남겨둔 작은 집 마저 다 해 먹은 아빠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 알고 있고 내가 그런 그의 딸이라는 것이 내 마음 속엔 누구도 남겨주지 않은 주홍글씨 같은 것이라 시골에 가는 것은 좋지만 늘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치료, 치유할 수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하다 아빠의 과거 얘기를 들려주시던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언제 지킬지 아직은 모르겠는 약속을 하나 했다.


"할아버지,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내가 우리 아빠 빚 꼭 갚아 줄께, 집을 사든 산을 사든, 언제가 꼭 갚아줄께."

그런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시고 "네 빚이 아니니 걱정마라." 하셨지만 그래도 그런걸 다 생각하다니 기특하다, 고맙다, 라고 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으셨던 할아버지는 나이 탓이신지 조금 물렁해 지셨나, 눈물을 훔치셨다. 그 눈물의 의미, 다는 알지 못하지만 조금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빈 말은 하지 않는다.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부정과 심한 갈등을 많이 겪은 인간이 답습한 결과랄까.

아무도 묻지 않는 아빠의 빚은 언젠가 내가 꼭 갚는다.

그런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 날 아이들과 잠자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성묘를 마친 뒤, 고들빼기 무침을 정말 맛있게 하는 친척 집에 하루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언젠가부터 한동안 내 꿈에서 전혀 보이지 않던 아빠가 꿈에 나왔다.




꿈에 아빠는 생전 좋아하시던 칼 같이 각이 잡힌 하얀 모시 적삼에 하얀 구두를 신고 계셨다.


아주 멀리서 보이던 것이 내 가까이로 움직임없이 다가왔고 '아빠'가 '내 꿈'에 나타난 것을 인지하자 버럭 겁이 났다. 또 나를 죽이겠다고 꿈에서 쫓아오면 난 또 살겠다고 죽어라 도망치는 꿈을 꾸는 걸까?


하지만 온 몸이 따뜻하고 나른한 것이 아빠가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 상황에 내가 있지 않음을 알렸다. 그러자 아빠가 너무나 선명하게 꿈에서 나를 보고 인자하게 웃어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민지야, 잘 왔다. 미안했다."


그건 꿈이었지만 진짜 아빠였고 아빠의 진심이라는 걸 아는 순간, 이해 하는 순간, 받아 들이는 순간, 설명하지 못할 응어리들은 한 겨울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는 고드름처럼 흐드르르 녹았고 위협과 폭력의 내가 기억하던 아빠와 작고 겁 많던 어린 내가 헤어졌던 그 시점으로 우리는 돌아갔다. 아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참으로 많은 용기와 힐링을 했구나, 나처럼, 그리고 그런 내가 그는 자랑스럽구나, 도와주고 싶구나, 늘 지켜주고 있구나, 특히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와 내 삶을 위해 어딘가 서 있으시구나, 미워할 필요도, 나쁘게 기억할 필요도, 그의 삶을 안타까워할 필요도 이젠 없구나,


그 순간 눈을 떴다.


거실 창문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나와 아이들을 향해 부드럽게 온기를 쏘아주고 있었고 꿈같지 않은 꿈을 꾼 나는 또 한 번 눈물이 났다.


아빠와 화해를 한 것이다.



누군간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우연이다 할 수 있겠지만 아빠와 화해를 한 뒤 이상하게 일이 잘 돌아간다.


그 때 한국에서 돌아와 지금부터 벌어 집 사야지, 했는데 몇 달만에 수영장과 넓은 땅이 달린 멋진 집을 (캐나다에) 내 이름으로 사게 되었고

일하던 스시 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다 고든 램지 밑에서 일하던 포르투갈 셰프가 일하는 럭셔리 스테이크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갑자기 돈을 미친듯 벌어내 가정 경제를 도와낼 수 있었고

할머니는 그간 돌아가셨지만 난 앞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딸을 얻었다.


사이가 좋지 않던 남편과 남편의 아버지(내 시아버님)과의 사이가 완전 화복돼 남편은 아버님의 사업체를 물려받게 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고

나는 이제 일을 하지 않아도,

한국을 가고 싶다면 비지니스 비행기표를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갖게 되었다.



2016년 ‘상상하는 여자’를 처음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의 나는 2022년의 나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충북 청풍


And I realized that He is my guardian Angel and fearless protector and to my childrens.


그래서

그리고

아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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