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정체성 6)

by 루나


1995년 12월의 끝자락.

아빠의 장례식.



발인 전 날, 가족들에게만 보여주던 아빠의 주검을 보고 충격에 빠져 사실 난 장례식 때, 장례식을 치르던 병원의 자판기 옆에 있는 작고 후미진 공간에 숨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불효도 그런 불효가 없지, 어째 부모보다 먼저 죽는대요?" 하고 장례식을 찾아온 어떤 사람이 할머니의 손을 덮어잡고 엉엉 울어댔다.

할머니도 물론 슬퍼 보였지만 장례식을 찾은 다른 많은 사람들만큼 슬프게 목청껏 울지 않았었다.




아빠가 알코올 중독, 남용으로 인해 간경화로 돌아가신 1995년, 내 열한살의 겨울 이후 내가 친엄마를 만나 필리핀으로 떠나던 스물 두살이 된 2006년까지 약 십여년간, 나는 예순을 훌쩍 넘기시고도 경기도 성남의 공장지대에 위치한 시멘트 공장 안에서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던 아빠의 부모님이신 '나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살았다.


난 가끔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고 혹여나 살아계셨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할 수 없는 상상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분들과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 무엇보다 감사했고 소중했다.




외국에 내 가정을 차리고 바쁘게 살아도 한국은 여전히 그립다.

2006년에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 2007년도 캐나다에 가 산지 14년째 되던 2017년 가을, 나는 서른 넷이었고 외국인 남편과 예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무려 11년만에 한국을 약 한 달 반에 거쳐 다녀올 수 있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밤으로 꿇어지지 않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큰 아들이 만 열 셋인 2022년, 녀석이 나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벌써 훨씬 많이 나가는데 이 녀석이 여자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더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병상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장례식이 다 끝난 집에 돌아가 할머니 방을 삼사일 쓸고 닦아내며 울다 웃다 정신없이 캐나다에 돌아와 보니 나는 생각도 예상도 못하게 임신이었다.

그 해 가을, 딸을 낳았다. 이름은 '장미'다.


life is in present, present is life.



할머니를 잃었지만 삶은 나에게 여자라는 생물체로 잃었던 나의 유년과 꿈을 제 3자지만 나라는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딸이라는 매개체를 가질 수 있게 됨으로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자식은 다 같은 자식이지만 엄마라는 존재로 아들, 딸을 같은 방법, 같은 정서로 키울 수는 없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들 딸을 둘 다 키울 수 있게 된 엄마만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성찰일까.


"낳으면 키우지"라고 종종 셋째에 대한 농담을 하곤 했는데 진심으로 딸을 낳게 된건 할머니 덕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이 그리울 때, 가족들이 그리울 때, 그것도 아님 그냥 이유도 없이 외로울 때 아이를 꼭 껴안고 아이의 냄새를 맡으면 몰아치는 감정의 회오리를 잠시 잠재울 수 있다.


할머니가 주신 게 분명한 내 딸.








할머니에서 나.

나한테서 나온 내 딸.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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