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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Nov 27. 2020

이제는 답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질문에 대하여

중학생쯤 되었을까. 영화를 보다가 문득 죽음에 대한 인지를 했다.

나는 며칠을 생각하다가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죽으면 어떻게 돼?"

엄마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얼버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안심할 수 있는 답을 듣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이를 넷 낳고 기르는 어른인 엄마에게는 진부한 질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그 질문은 나의 삶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나침반이었다.


죽음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그 질문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죽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나는 사로잡혔고 답을 찾을 수 막막한 중간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소심한 나는 이 질문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첫사랑 가슴앓이하듯 마음속에 담아두고 시름시름 아팠다.

이 물음은 또 다른 물음을 불러왔다.

'좋은 대학을 가고 부자가 되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죽음 앞에서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엇을 해도 떨떠름했고 크게 좋은 것도 크게 나쁜 것도 없었다. 공부도, 일도, 사랑도 중간쯤 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거대한 죽음 앞에서 우리의 '쓸모'는 누가 평가할 수 있는가.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 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은 각양각색이고 정답이 없는 유일한 이 질문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극과 극의 모습으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나는 아직 해결 중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고, 걸었고, 여행을 다녔고, 책을 읽었고, 사람을 만났다. 그 속에서 나름의 해답도 찾았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믿음이고, 대자연과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에 대한 경외이기도 하다.


나는 결국 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 동안 나를 지배해 온 믿음, ‘인간은 역시 나약한 존재’라는 명제는 내 마음 한켠을 늘 차지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에 의해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나약하지 않으면 누가 나약한가?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가 되었지만, 얼마 전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보고, 외삼촌을 심장마비로 한순간에 떠나보내야 하는 일이 겹치면서 거대한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울의 거친 파도가 잔잔해질 무렵, 차츰차츰 수면 위로 드러난 '나를 공허함으로 내모는 정체'는 '죽음'이라는 실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유한한 삶을 후회 없이 잘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듯, 삼촌이 그렇듯, 우리 모두의 영혼은 사그라들 수 없으므로...

 




중학생 무렵 떠오른 질문 하나로 긴 순례길을 혼자 걸었던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순례길은 외로웠고 무거웠고 길었으나 그만큼의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례길을 완주했을까? 아니다. 아직도 순례길에 있다. 하지만 내 순례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답을 얻고 그를 극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로지 내게 남겨진 문제는 탄생과 죽음, 그 사이의 '삶'을 사랑하기를 행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를 매 순간 선택하는 것.

그로서 매 순간 삶을 갱신하기 위하여 나는 또다시 순례길에 들어섰다.


회색지대는 애초에 없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둘은 공존할 수가 없다.

빛으로 한 발자국을 떼자 삶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뭐든 제대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애초부터 원하던 그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용기'라는 것이다.


이토록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문제에 엄마는 왜 그리 쉽게 답했을까.

어차피 결국 내가 스스로 풀어낼 문제라는 것을 아셨을까. 이 문제에 관한 한 출제자도 응시자도 채점자도 ‘나’ 자신이다.

나는 오래전 이 문제를 출제했고 매번 응시했고 언젠가 한 번의 채점이 남아있다.

냉정하게 채점할 그 날, 나는 나의 점수에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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