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울 Jan 22. 2021

넌 계획이 다 있구나

때로는 무계획도 괜찮아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하는 일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새해를 맞아 계획을 세워본다. 올해는 뭔가 특별히 새해를 맞아 느끼는 감격이나 기대보다는 그저 무사함에 감사를 느끼게 되는 한 해였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내 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만 해도 감개무량했다는 것이 나의 소감이었다.

그렇다고 새해를 맞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없지는 않다. 한 달 전에 미리 주문한 뽀얀 일기장 첫 페이지를 넘겨서 몇 번을 손으로 눌러본다. 오랜만에 쓰는 손글씨가 탐탁지 않은 것은 볼펜 탓이라며 또 다른 펜을 찾아 헤매며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어본다.


새해에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학창 시절에는 단순했다. 공부도 더 잘하고 짝사랑하는 아이와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좋은 직장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좋은 짝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 당시에는 한 해가 끝날쯤엔 언제나 '올해도 글렀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그른 게 아니라 그저 더딘 것이었다. 내 마음은 앞서갔지만 내 발자국은 더디었다. 그러나 그 걸음이 모여 이루지 못한 소원의 개수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 인생이 더욱 값지고 고마워졌다. 나의 수고로운 발걸음에 칭찬 한번 시원하게 못해준 시간이 아쉽기도 했다.


새해 소망을 생각해보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할머니 집 창 밖 둥그런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간절한 마음이 내 인생을 꾸려왔다. 비록 새해 계획이 그 한해 동안 이루어지는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주 길게 늘어뜨린 시간을 잡아 정산해보면 못 이룬 일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소망이 얼마나 중요할까? 내가 마음속에 심은 소망 하나, 희망 하나가 나의 삶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예쁜 소망을 꿈꿨을까?


종이 위에 펜을 든 내 손에 쉽사리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갑자기 생각마저 텅 비어 가는 듯했다. 비로소 꾹꾹 눌러쓰는 첫 번째 소망.

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닌 내가 적은 말 치고 참 착한 말이다. 머릿속에 떠올린 이루고픈 소망들이 방울방울 터지고 있지만 나는 가장 큰 풍선 하나를 불어 내 소망을 집어넣기로 했다.

나는 정말 모든 것에 고마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 있는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마저 나의 희망을 차곡차곡 적어나가 본다.


요 며칠 답답함을 느낀 것은 글감도 떠오르지 않고, 나의 인생 목표도 명확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흐릿한 안경을 쓰고 걷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며 몇 번이고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괜히 딴짓만 실컷 하다가 한 줄도 쓰지 못하였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는 참 못나보였다. 해가 넘어가며 이래저래 정산을 해 보면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었고 글도 끄적끄적 쓰고 있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길렀다. 그러나 사실 그 변화로 내 주변의 상황이 변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새해 목표를 적기 위해 앉아서 한참을 망설이고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짰다. 그러다 자연스레 손에 힘이 가고 써진 한 줄은 '감사하는 나'였다. 그러고 나니 나의 소망도 막힘이 없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늘 더 나은 나를 바란다. 더 나은 상황을 바란다. 더 많은 책을 내기를 바라고 더 많은 독자들을 갖길 원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고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기를 바란다. 왜?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싶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그러나 과연 그런 꿈들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행복할까? 나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솔직해져야 한다. 사실 내가 원했던, 대학, 취업, 결혼, 출산 등등의 절실한 소망들이 다 이루어졌지만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나는 진정 충족감과 풍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올해 모든 것이 막힌 상상치 못했던 한 해 동안 나는 진심으로 순간순간 더 감사했다. 여행 한번 가지 못해도 가족이 함께 있음에 감사하고, 큰 부유함은 없어도 남편 회사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부모님 생일잔치 한번 크게 못해도 그저 멀리에서나마 건강하게 계심에 감사했다.


그러다 보니 새해에 그다지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거창한 소원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나는 내가 적은 첫 번째 소망을 보고 꽤나 만족했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만족이었다. 함께 겪은 고통, 그리고 나의 내면의 고통, 그리고 내 친구의 고통 속에서 나는 지금 이 모든 것이 진정 축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알았다니. 그토록 철없던 나도 조금은 철이 드는구나 싶다. 그런 나도 이제는 좀 보아줄 만하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픈 소망을 품지 않은 사람이 어디 하나라도 있을까? 나 또한 올해 는 더더욱 그러하고 싶다.

이 마음 하나로 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걷는 모든 걸음에 어쩌면 희망과 성공이 뒤따를지도 모르겠다.





















이전 16화 망설임의 축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