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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Mar 13. 2022

망설임의 축복

내 글을 읽어보면 나의 역사가 보인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엄마 집에서 발견한 오래된 다이어리에서도 나의 글의 결은 같았다는 것이다. 지난날의 일기장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은 아이는 이미 어른이라는 것이다. 혹은 열 살쯤 된 이후로 줄곧 내 영혼은 아마도 제자리걸음이 아니었을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미성숙의 정도가 요점은 아니다. 요점은 아이는 이미 온전한 자신의 세계가 확립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육체는 자라고 갖가지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지만 이미 확립된 나의 생태계는 같은 방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소화하고 발산하는 듯하다.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그래 왔던 것 같다.


서두가 길었지만 사실 일기장을 읽거나 나의 글들을 보면 내 안의 숨은 '죄책감'을 느낄 수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의 속마음이 드러난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벌거벗은 마음에 수치심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소심함이나 한계를 숨길 곳이 없을 때 비로소 인정하거나 회피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나는 인정도 회피도 아닌 그 중간쯤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간극의 고유명사는 '망설임'이었다. 


나는 망설이기를 즐겼다. 어떤 일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일종의 망설임은 의례 밟아야 할 과정이겠지만 이미 선택한 일에 대한 감정을 느끼는 일에도 나는 망설였다. 그리고 나의 감정이나 나의 결정에 아쉬움을 빙자한 비난을 내리쬐고 있었다. 


최근에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어떤 일을 통해 친밀하게 지냈던 한 지인과 거리가 생겨버렸다. 사실은 나는 굉장히 어영부영, 얼렁뚱땅 같지만 사실은 매우 고집불통, 나름 나만의 인생전략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섞이기에는 독특하고 그렇다고 혼자 서기에는 외로운 약 3할쯤은 망설임으로 채워진 사람이다. 그런데 망설이는 동안 상대는 거리를 두곤 한다. 망설임이 단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망설이는 사람도 괴롭다. 상대방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관계는 지속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관계는 삐그덕 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멈추지 않는 고민은 언제쯤 끝이 날까.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에도 비슷한 글이 쓰여 있었음을 기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아주 어려서부터 이렇게 생존해왔구나. 나는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대하기로 했다. 


망설이는 나를 비난하거나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망설이는 시간을 축복하기로 했다. 

사실 망설이는 동안 떨어져 나간 기회 혹은 사람은 지나고 보면 잘 된 일이기도 했다. 사실 그렇지 않다 해도 언제나 선택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선택한 일을 이왕이면 축복해주는 일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이 내가 내 안에서 숨어 지내면서 망설이는 마음을 돌보아 주는 시간은 다르게 보면 감사할 시간이다. 분명 망설이는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혹은 내가 조금 더 진지하던가. 


망설이고 있다면 그 시간을 축복하고 싶다. 그리고 한치도 크지 않은 것 같은 내 영혼에게 감사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고유의 나를 나름 지켜온 순수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그 이유는 어떻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책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성장은 지금 나를 인정할 때부터 온다.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마음 습관이 첫 번째다. 나의 지나온 시간과 지금 나의 시간을 빠짐없이 축하해주자. 근거 없는 자신감은 훌륭한 삶의 태도이다. 나의 못난 시간도 축복해줄 때 드디어 나는 내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구든 가야 할 곳이 있다. 누구든 태어난 이유가 있다. 누구든 소중한 존재다. 그러니 어떤 길을 가지 않았다고,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졌다고 나를 책망하지도 그를 원망하지도 말자. 그를, 그리고 나를 축복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것이 답이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랄프 왈도 에멀슨의 말이다. 


오늘도 망설임을 축복하면서 내가 택한 답이 정답임을 내게 말해주자. 

내가 사는 길이 맞다는 사실은 누가 말해줄까? 그건 바로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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