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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Jul 15. 2022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

조금 더 노력해봐 라는 말보다 충분하다는 말이 좋다. 


충분히 해봤잖아. 이제 애쓰지 않아도 돼.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평생 위안이 되는 말만 듣고 살 순 없을까? 어차피 책을 피거나 tv를 켜도 나보다 더 노력한 사람들이 나온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나도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내 인생이니까, 나대로 노력해왔으니까. 그러니까 내 옆의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돼. 충분해. 


얼마 전 한 부부상담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자신이 더 노력하겠노라고 말했다. 패널들은 아름다운 결말을 기다렸다. 아내의 대답을 모두 기다렸다. 아마도 우리가 예상한 말은 이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제 다시 힘을 내서 잘해보자."

하지만 아내의 침묵은 예상외로 무거웠고, 길었다. 그녀는 긴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신이 없어."

"더 노력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지금은 어떠한 답도 못하겠어."


그 누가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지점에서 눈물이 났다. 이것도 그녀의 용기다. 그만둘 수 있는 것도 그녀의 용기다. 최선을 다해본 사람은 미련이 없다. 이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잘해서 그만둘 수 있다는 자격이 있음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다 알겠다. 가족을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하지만 그 속에 나 자신은 없다. 

그래. 그녀는 가족도, 일도, 삶도, 그녀를 위한 선택을 이제야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옳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지 간에.


물론 그만두는 것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결정을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대단히 용기 있어 보였다. 처절하게 사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그것이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한번뿐인 나의 삶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처절하게 산다. 잘 살기 위해서. 잘 산다는 것이 참 어렵다. 결과가 좋은 것은 나중이고,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인생은 한결 쉬워진다. 그때 그렇게 결정한 나도, 그때 그렇게 휘둘린 나도, 지금 이렇게 단호한 나도, 모두 같은 나이다. 결정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라고 했으니. 우리는 암묵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어떤 선택을 해온 샘이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그렇게 각자 최선을 다하며 처절하게 살아왔다. 


그런 우리에게 이제는 처절하게만 살지 말라고, 애쓰지 말고 가볍게 살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내 가족이거나 친구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나에게라도.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충분히 노력했잖아. 이제 조금 쉰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어.

무슨 일 생기면 또 감당하면 돼. 

이제 애쓰지 말자. 


애쓰는 것만큼은 관두자. 이제.


애간장을 녹이며 사는 일은 이제는 관두고 싶다. 매 순간 최고 이진 못해도, 그래도 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을 택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 모든 중심에 내가 있고 싶다. 나를 위한 삶인데도 왜 그토록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을까. 


이제 애쓰지 않고 살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선택하기로 했다.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로워서가 아니라,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같이 있고 싶어서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이 두려워서 그동안 애를 썼는지 나에게 묻고 싶다. 우리 모두 각자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두려워하던 그것이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면, 이제는 애쓰지 말기로 하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주문처럼 나에게 말해주자. 나를 위한 주문 하나쯤 마련해두고 애를 써서 서글플 때마다 꺼내서 말하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애쓴 삶이 잘못된 거다. 그때 그 선택도 지금까지의 노력도 충분했다. 

더 노력하지 말고, 이제 노력하고 애쓰는 것을 내려놓자. 조금 쉬자. 조금 쉬어도 된다. 

나의 삶이잖아. 


삶은 별반 차이 없이 흘러갈지 모른다. 여전히 같은 삶의 일정표를 수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를 반복하면서 애쓰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같은 일정표라도 마치 여름방학 같다. 여름방학 같은 삶을 사는 거다. 


애쓰지 않는 것은 노력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맞추던 내 삶의 추를 내 마음으로 가져와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것에 노력을 맞춰보는 것이다. 


이제 한번 여름방학 같은 삶을 살면 어떨까. 

낮잠도 자고, 듣고 싶은 노래도 실컷 듣고, 하고 싶었던 게임도 실컷 해보는 여름방학.

그것도 지루해지면 우리는 또다시 나의 업을 찾고, 만날 친구를 찾게 되겠지. 삶이라는 학기 중에 방학을 넣는 것도 내 선택이니까. 애쓰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표를 꼭 만들었으면. 그녀도 나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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