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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Mar 06. 2021

결국 멈추지 아니했다

조급한 나를 위해

 지난해 말쯤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아이를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서 놀게 두고는 나는 열심히 글을 쓰며 행복해하던 순간이었다.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행복함을 누릴 수 있겠다고 마음속으로 선언을 하던 장면이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뭘 한다고 그리 바쁜지 말이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데도 나는 왜 이리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지 모르겠어." 

 한참 마음이 바삐 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기를 쓰던 즐거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어서 일기 쓰기를 마치고 해야 할 일들을, 읽어야 할 글들을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시계는 소리까지 내며 전속력으로 초침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나의 인생의 하루하루는 닳아 소멸되고 있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하염없이 부서져 내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지혜로운 한 사람을 찾아 상담을 청했다. "뭔가를 많이 해요. 그런데 너무 바빠요. 그리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어서 말했다. "제 몸이 세 개쯤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몸은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로서, 한 몸은 부모님의 노년의 건강을 책임지는 딸로서, 나머지 하나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가르치기도 하는 저 자신으로서 말이에요." 한참동안 이어진 나의 고민을 듣던 이가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너무 잘하고 계시네요!"

 나는 항변했다.

"대단한 게 아니에요. 계획한 걸 제 때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다가는 단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할거예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말했다. "잠시 멈춘 걸 보고 완전히 멈췄다고 할 수 없잖아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조급증을 가라앉혀주는 효과적인 조언이었던 것이다. 

'맞아, 오늘 내가 딸로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느라 다른 일을 못했다고 내가 나를, 혹은 엄마이기를 멈추었다고 할 수 없잖아.' 

크게 보아, 내가 몇 년간 육아를 도맡아 한다고 나 자신의 성장을 멈추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흔들릴 때마다 앞으로 이 말을 떠올리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멈추어도 멈추지 아니했다. 언젠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일들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조금은 더 여유롭게 말이다.



불안이 다시 말을 걸 때

 그런데 다시 난관이 찾아왔다. 이사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고 집도 엉망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애써 찾은 나의 루틴을 잃지 않고 싶었다. 아슬아슬 나의 루틴을 이어가던 중 모처럼 엄마가 오셨다.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인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이사를 도와주시기 위해 엄마가 오신 후 나의 루틴이 완전히 정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멈추어도 멈춘 게 아니라며? 이사를 잘하고 엄마도 내려가시고 난 후에 다시 시작해도 돼.'

그러나 실은 불안했다. 나의 일상이 흔들리면 내가 사라질 까 봐 두려웠다. 나를 버티고 있던 체계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굳은 몸 깊은 곳에서부터 도사리고 있는 불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할 수 있겠어? 너는 며칠만 지나면 패배자가 될 거야.'

'...'

나는 침묵했다. 살아가는 동안 이 불안이라는 친구와 완전히 이별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그래. 하지만 나는 분명히 더 행복해질 거야.'

 패배와 행복 간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불안은 패배를 말하고 내 마음은 행복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다시 기억하기로했다. 멈추어도 멈추지 아니했다. 

'지금 당장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고, 당분간 내가 하던 일에 몰두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발견한 이상, 나는 그 길을 가고 말 거야. 그러니 오늘 잠깐 멈춘 들, 내가 행복해지는 그 길을 마다하겠는가?' 

나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호흡하는 동안 숨어있던 불안이라는 녀석을 찾았다. 마음 깊이 숨어있던 놈의 정체를 들추어보니 생각보다 작고 보잘것없었다. 호흡을 몇 번 더 하는 동안 그 녀석은 점점 더 작아졌다. 나는 일기장을 꺼내어 그것들을 더 멀리 보낼 요량으로 힘껏 주문을 적었다. 그 주문은 '지금 당장 감사할 것들'이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저 쪽 내 작은 방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잘 잤니?' 하며 나오시는 것이다. 

나는 그토록 그리운 엄마가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행복에도 양념과 시간이 필요하므로

 내가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에 지난날이 패배자의 무대였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었다. 나는 그 무대에서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현재 나의 곁을 둘러싼 것에 나를 쏟지 못했다. 불안이라는 놈은 사실 없었는지 모른다. 현재와 내가 벌어진 간격만큼 실체 없는 두려움이 그 간격을 채웠고, 그 이름은 불안이었다. 나는 이제껏 허상의 도깨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옆에 계신 엄마와 함께 할 일들을 계획하니 하루가 짧았다. 참, 이사 전에 엄마와 꼭 함께 가고 싶은 나만의 아늑한 카페도 있었다!


 우리가 더 행복하기 위해 하는 수많은 일들도, 양념과 시간으로 숙성이 필요했다.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로 양념이 버무려지고 때로는 멈춘 듯 보이는 기다림도 필요했다. 나는 결국 이 모든 것을 즐겨야 했다. 그리고 이 것이 삶의 전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 것은 결국 나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것이 삶의 과제가 아닐까.


그리고 멈춘 듯 보였던 나의 글도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올 나만의 페이지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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