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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girl Aug 04. 2022

할머니집과 엔트로피

step.1 물리적 독립, 아니 분리

나의 친한 친구 중 한명은 엔트로피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사실 엔트로피라는 단어만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고, 그 아이가 무엇을 말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개인의 삶을 엔트로피에 빗대어 말했을 때의 강렬함만 남은 것이다.


퇴근 길의 보라매공원

집에서 물리적으로 나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하찮은 분리도(독립이라고 말하기도 창피하므로 분리라고 해야겠다.)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반 년 전쯤 이었다. 독립에 대한 나의 의사를 밝히자 나타난 첫 번째 장애물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집을 나간다는 것을 거의 절연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따라서 돌파구로 찾은 것이 할머니 집이었다. 마침 경전철 개통을 앞둬 출퇴근 시간이 거의 절반 이상 단축되기도 했으며, 부모님의 걱정을 그나마 덜어줄 수 있는 선택지였다.


두 번째 고난은 코로나였다. 오미크론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확진자 수가 폭등하자, 부모님부터 친척들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셨다. 나도 내가 혹여나 같이 살며 코로나를 옮기기라도 할까봐 두려워 짐을 옮기지 못했다.


이렇게 어영부영 하다가는 집을 나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진짜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무렵 할머니께서 갑자기 편찮으시기 시작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본인이 하시고픈 취미 활동들을 하며 에너지 넘치게 사시던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꽤 충격이 컸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밀어닥치자, 집에서 나오는 것이 과연 옳은 일 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으며, 올바른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접근하든, 자연상태에서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여 결국 그 변화의 가능성이 소진된다면 종말을 맞는 것처럼 하나의 진리로 수렴한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독립의 과정이 필요하며, 그 중 물리적 독립의 과정 또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이 굳어져 가던 중, 이를 막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나는 꿋꿋하게 운명론을 믿어왔던 터라(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혹시 내가 행하고자 하는 물리적 분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들이 아닐까? 까지 생각이 흘러갔던 것이다.


불현듯 친구가 말했던 인간세상의 엔트로피 개념이 생각이 났다. 무작위성을 갖고 무질서해지는 엔트로피와 같이 인간도 태어나 독립해가는 과정이 엔트로피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이 과정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연상태와 비슷한 이 과정들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의 것들을 실행하는 데 꽤 큰 고민과 고통을 겪게 하는가?

거창하게 엔트로피와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사실 나는 고3때 물리 서술형 평가에서 0점을 맞은 사람이다. 어설픈 개념으로 쓰는 가벼운 글이니, 과학적으로 평가하지마시라.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자연 상태의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무질서함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허나, 생명체는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에 저항하고자 한다.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아저씨는

    “주위로부터 음의 엔트로피를 계속해서 얻음으로써 모든 생물은 살아간다. 유기체가 먹고 사는 것은 

    바로 음의 엔트로피이다. 생물은 주위로부터 질서를 흡수한다.”

라 말했다더라.


전체의 흐름에서 보았을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과 편안함, 질서를 추구한다. 아주 미시적인 관점에서 삶을 보았을 때, 우리는 에너지를 사용해 질서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결국 나이를 먹고 자연을 소비하고 시간이 흘러가듯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나는 독립의 과정이 당연한 수순임을 알았지만, 

그 과정 중의 불안정성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것일까?


열역학도, 독립도 어렵다.

빙글뱅글.

알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강이 흘러 바다가 됐는지, 바다가 있기에 강이 흐르는지.

물리적으로 분리돼어 심리적으로 독립했는지, 자립의 마음이 먼저 들어 물리적으로 독립했는지.




다행히도, 할머니께선 금방 건강을 회복하셨고 나는 그길로 바로 이사를 왔다.

가구를 하나씩 채워 넣고, 이 곳을 나의 공간으로 만드리라 생각했다.


첫 날 내가 들고 간 것은, 책상과 데스크탑, 이케아 철제 수납장이 전부.

내 분신과도 같은 데스크탑 형제들(본체,모니터,키보드,스피커...)

이사를 하는 과정도 준비과정이 너무 없었던 지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

이것이 나의 긴 여정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니 즐거울 따름이었다.

당연히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 생각도 했다.



적어도 "나의 독립"이라는 계 안에서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증가할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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