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 AR 글라스를 창업한 2000년대생 한국 스타트업을 보며
2000년대생 한국 창업팀 피클은 한때 인스타그램에서 조금은 짜쳐 보이는 바이럴 콘텐츠로 유명했던 팀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촌스럽고, 과장되고,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영상들이었다. 그런데 이 팀은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멋있어 보이려 애쓰지 않았고, 대신 살아남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결국 이 팀을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후 피클은 식품 유통, 챌린지 콘텐츠, 앱, AI 아바타, 실시간 스트리밍을 거쳐 지금은 AR 글라스를 만드는 팀이 되었다. 이건 방향 없는 방황이 아니라, 더 큰 질문을 향해 이동해온 궤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를 붙잡고 버티다 인생이 멈추지만, 이 팀은 하나를 버리며 인생이 확장됐다. 그래서 피클의 창업기는 성공 스토리라기보다 진화 기록에 가깝다.
사람들은 묻는다. “원래 AR 전문가였어?”, “원래 하드웨어 하던 팀이야?” 아니다. 이 팀은 처음부터 AR이나 하드웨어 전문가가 아니었다. 다만 “AI와 AR이 결합되면 인간의 인터페이스가 바뀌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오래 머물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시간을 쏟았고,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결국 그 질문이 안경이 되어 나오고 있다. 기술은 출발점이 아니라, 몰입의 부산물이었다.
이건 피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Boom Supersonic의 창업자 Blake Scholl은 항공 엔지니어가 아니라 Amazon PM 출신이었다. 그는 “비행기가 다시 초음속으로 날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작아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회사를 세웠고, 지금 Boom Supersonic은 American Airlines와 함께 초음속 여객기를 실제로 만들고 있다. Stability AI의 창업자 Emad Mostaque 역시 전통적인 AI 연구자가 아니라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이었다. 그는 “AI는 소수 기업이 독점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Stable Diffusion을 오픈소스로 풀었고, 그 선택 하나로 생성형 이미지 시장의 흐름을 바꿨다. 이 사람들이 증명한 건 단 하나다. 전문성은 출발 조건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
그리고 지금 피클도 같은 궤적 위에 있다. AI 아바타를 만들던 팀이, 실시간 스트리밍 모델을 만들던 팀이, 이제는 AI와 AR을 결합해 하드웨어까지 만드는 팀이 되었다. 이건 “우리가 전문가라서 합니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전문가가 아니어도 해볼 수 있습니다”라는 증명에 가깝다.
물론 나도 안다. 지금 피클 AR 글라스는 솔직히 말하면 아직 “믿어봐, 이거 진짜 쩔 거야”라는 느낌에 가깝다. Humane Pin이나 Rabbit R1처럼, 한때는 세상을 바꿀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스캠 기기 취급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또 말할지도 모른다. “봐라, 역시 안 됐지.” “또 하나의 허풍이었네.”
그런데도 나는 이 도전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술 혁신의 역사에서,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성공한 제품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시도들이 쌓여서, 언젠가 하나의 표준이 만들어진다. Humane Pin이 실패하더라도, Rabbit R1이 실패하더라도, 그 실험은 다음 세대의 기기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피클의 AR 글라스도 그 계단 중 하나일 수 있다.
AI와 AR 글라스의 결합은 단순한 기기 진화가 아니다. 이건 스마트폰 이후 인간의 인터페이스가 바뀌는 순간이다. 우리는 더 이상 검색하지 않고, 더 이상 암기하지 않고, 더 이상 화면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정보는 눈앞에 뜨고, 언어는 자동으로 번역되며, 맥락은 실시간으로 보정된다. 지식은 소유가 아니라 환경이 된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에서, 확장된 존재가 된다.
피클은 이 변화를 소프트웨어로만 하지 않고, 하드웨어까지 책임지겠다고 나선 팀이다. 이건 성공 확률이 높은 선택이 아니라, 실패 확률이 훨씬 높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이 팀은 그 길을 택했다. 잘 되는 걸 더 잘하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세상이 바뀔 방향을 먼저 고른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피클 AR 글라스를 사전 계약했다. 네오 휴머노이드에 이어 두 번째 사전 계약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제품이 실패할 수도 있다. 양산이 늦어질 수도 있고,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다. 심지어 “또 하나의 Humane Pin”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돈이 아깝지 않다. 나는 이 안경을 제품으로 산 게 아니라, 도전을 산 거기 때문이다. 이 팀이 이 방향을 택했다는 사실 자체를 응원하고 싶어서 결제했다.
나는 이렇게 소비하고 싶다. 완성된 결과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공한 역사만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피클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선택은 내 인생에서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꿈꾼다. 너무 쉽게 “그건 미국에서나 가능하지”라고 말한다. 너무 쉽게 “나는 전공자가 아니잖아”라고 스스로를 자른다. 그런데 Blake Scholl도, Emad Mostaque도, 그리고 지금의 피클 팀도 모두 그 논리를 거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격이 있어서 도전한 게 아니라, 도전하면서 자격을 만들었다.
피클은 처음부터 멋있지 않았다. 중간에도 멋있지 않았다. 지금도 완벽하게 멋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팀은 계속 살아 있었고, 계속 만들었고, 계속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지금 AR 글라스라는 다음 챕터까지 왔다. 이건 실패의 연속이 아니라, 질문의 연속이 만들어낸 궤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삶이 부럽다. 완성된 모습으로 평가받는 인생이 아니라, 과정으로 증명되는 인생. 기술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방향으로 쓰는 사람. 피클 팀은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제품 소개가 아니라, 도전 권유다. 관련 전공이 없어도 된다. 경력이 없어도 된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피클, Boom Supersonic, Stability AI는 모두 그걸 증명하고 있다.
피클의 AR 글라스는 안경이 아니라, 이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한 팀의 대답이다. 그리고 나는 이 대답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한국의 누군가가, 오늘 밤 작은 무모함 하나쯤은 스스로에게 허락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는 세대다.
다만, 아직 스스로를 너무 작은 세계에 가두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