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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크리스마스

ep.19

by 채민주

정말 오랜만에 5시 30분,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대충 얼굴과 이를 닦고 옷을 입고 선크림을 바르고. 간만에 느끼는 익숙한 느낌이 반가웠다. 그립지는 않았던 툭툭이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웰리가마 해변에 도착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서핑을 가르쳐줬던 샨네 샵을 가니까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 내 눈에 비쳤다. 사실 나처럼 거쳐갔던 외국인들이 많았을 테니 기억을 못해도 서운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에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이 어딘가 뭉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서핑을 마치고 해변으로 나오면서 샨 동생 바완을 마주쳤을 때 그 아이의 눈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한국 사람들 여러 명과 같이 강습을 받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 둘씩 사라졌다. 끝날 때쯤 되니 다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인스트럭터는 2명인데 사람은 1명인 상태가 됐다. 두 달만의 서핑이라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준비하라고 해서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하나를 타고 나가는 중에 샨이 나를 보고 감동 받은 표정을 짓길래 1년 전보다 좀 늘었나보다 싶었다.


샨네 샵 사람들이 이제 막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보드 빌리려고 물어보니까 안 빌려주겠다 그러고 2시간 빌리려고 한다니까 4시간 빌려야 한다네. 스리랑카 피플들 참 퍼니 피플이다.


오후 서핑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주 오랜만에 서핑 리뷰를 받았다. 또 얼마나 충격적일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처음 탈 때보다는 좋아진 것 같았다. 물론 신경써야할 부분은 많고 많지만…


같은 방을 쓰는 언니 두 명과 크리스마스 이브를 이렇게 보낼 순 없다며 ‘닥터 하우스’를 갔다. 음식도 먹고, DJ 앞에서 춤도 출 수 있는 공간도 있는 꽤나 핫한 곳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생맥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저기 앞에 나가서 춤을 추자면서 일어났다. 나같은 내향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아를 내려놓기에 고작 맥주 두 잔은 택도 없었다. 다들 춤을 추고 있는 데에서 나만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아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소주 2병은 마셔야 할 수 있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다음날, 저번에 스리랑카에 와서 만난 친구 애플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애플 친구들이랑 먼저 1차를 하다가 어제 갔던 닥터 하우스를 또 갔다. 어제도 핫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 넓은 곳에 사람이 꽉 차있었다. 음악 소리도 엄청 크고, 다들 춤추고 난리가 났다. 웰리가마 해변 음료 파는 아저씨도 만나고, 샨도 만났다. 다른 날 라인업에서 만난 사람이 날 닥터 하우스에서 봤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제대로 놀지는 못했다. 애초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 담배인지 대마인지 이상한 냄새가 계속 나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클럽 근처에도 안 가봤는데 나중에 마음도 편하고 정신줄도 좀 놓은 상태에서 다시 가보고 싶기는 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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