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부모님과 아기 키웁니다만 #13
인도 시부모님 댁은 시어머니 쪽, 시아버지 쪽 친척 집들과 매우 가깝다. ‘가깝다’는 말이 단순히 거리의 개념만은 아니다. 물리적으로는 차로 20~30분 거리지만, 정서적으로는 거의 ‘이웃’ 수준이다.
거의 주말마다 누군가가 찾아오고, 또 누군가가 찾아간다. 이곳의 가족 관계는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다.
처음 결혼했을 때 나는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인도에서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스케일이 내가 알던 그것과 달랐다. 내게 가족은 외할머니, 엄마, 큰삼촌과 작은 삼촌네 가족들이 전부였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로 친가와의 교류는 거의 끊겼고, 외가 쪽도 소수였다. 게다가 나는 외동딸이라 명절에도 열 손가락 안에서 세배가 끝났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결혼과 동시에, 내 인생에 50여 명 정도의 가족이 한꺼번에 ‘생겼다’. 아무런 절차도, 준비도 없이 갑자기 가족 단톡방이 열리고, 이름 모를 사촌과 이모들이 내게 '바비(bhabhi)'라고 불렀다. 바비는 '형수'나 가족 여성 어른을 부르는 호칭이다. 그야말로 ‘확장 가족’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결혼이란 한 사람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인도에서는 그 약속이 파도처럼 번져나간다. 남편과 결혼했지만, 동시에 그의 부모님, 형제, 삼촌, 고모, 그리고 그들의 친구와 이웃까지도 내 인생에 들어왔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자, 가족 네트워크의 시작이었다.
나는 한국인, 그들은 인도인. 서로 국적은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통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눈빛과 손짓으로 감정은 오갔다. 식사 때 밥을 내 앞에 더 담아주는 손길, 아기가 울 때 “베이비 슬립?” 하며 등을 쓸어주는 이모의 미소. 그 모든 것이 사랑의 언어였다.
시어머니의 고향집은 작은 시골 마을에 있다. 그곳에는 시어머니의 오빠 가족과 남동생 가족, 두 가정이 함께 산다. 오빠 댁에는 딸이 넷, 남동생 댁에는 아들 둘. 총 여섯 명의 사촌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나와 우리 아기를 정말 진심으로 아껴준다.
<친척집에서 아기 이유식을 먹이는 남편>
며칠 전, 우리는 다 함께 근처 힌두 사원으로 피크닉을 갔다. 어머니들은 밥, 볶음 야채 삽지 (Sabji), 요거트 (Raita) 등 정성껏 음식을 싸 들고, 사촌 아이들은 소풍이 마냥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나는 평화로운 풍경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우리가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펼치자마자 원숭이 부대가 나타났다. 그 뒤로는 동네 개, 그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소떼까지 — 말 그대로 인도식 ‘자연 다큐멘터리 라이브 버전’이었다.
결국 한 명이 막대기를 들고 보초를 서기로 했다. 원숭이가 덤벼들면 “쉿!” 하고 위협하는 담당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든든하면서도 웃기던지,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피크닉이 아니라 야생 생존 훈련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소동이 즐거웠다. 막대기를 든 시아주버니, 음식 보따리를 꼭 붙든 시어머니, 그 사이에서 빵조각을 몰래 나눠주는 아이들까지 —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가족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누군가가 원숭이를 막아주고, 누군가는 음식을 챙겨주고, 누군가는 그걸 보며 실컷 웃는 것.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이 웃음의 결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