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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씨 minjungsea Aug 13. 2021

옥수수 비닐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는 4년차 기획자이자 마케터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우연히 학생 인턴으로 들어간 곳에서 에디터라는 직함을 달았다. 말이 에디터지 온라인 식품몰에 올라가는 상품페이지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MD에게 상품에 대한 정보를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쓴 글을 바탕으로 포토그래퍼와 사진을 찍고 디자이너와 상품 상세페이지 디자인 작업을 했다. 


상품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엔 일정 포맷이 존재했는데 다음과 같았다. 상품명과 상품에 대한 한 줄 요약, 상품에 대한 설명 2-3문단, 상품에 대한 셀링포인트 4가지, 상품을 활용한 레시피 2가지. 이것들을 모두 적으면 워드로 1장 반 정도의 분량이 나오고 하나의 상품 페이지를 만들 수 기반이 된다. 게다가 보통은 MD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주기에 나는 적당히 보기 좋게 편집해 글을 써내면 되었다. 대신 타켓 시장이 프리미엄 식품 시장이었기에 글의 포인트는 ‘있어 보이게’였다. 


하지만 하루는 MD 팀장님이 난감한 얼굴을 하며 다가왔다. 보통 이런 얼굴로 다가오는 것은 불길한 징조다. 팀장님은 나에게 ‘강원도산 옥수수’라는 문구가 써진 옥수수 비닐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미안한 표정으로 ‘어떡하지 민정씨? 이번 상품은 딱히 정보가 없어. 게다가 상품도 도착을 안 해서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라고 했다. 졸지에 난 실물도 보지 못한 ‘강원도산 옥수수’ 7자를 A4 용지 1장 반 분량으로 불려 쓰게 되었다. 메신저로 팀장님께 판매자 정보든 품종 정보든 뭐든 좋으니 달라고 요청했지만 얻을 수 없는 건 없었다. 


온갖 옥수수에 대해 구글링을 하고 그동안 먹어왔던 옥수수 맛과 향에 대해 곱씹으며 ‘강원도산 옥수수’ 7글자를 A4 용지 1장 반 분량의 글로 불리는데 성공했다. 누가 생산했는지 품종은 무엇인지도 모를, 진짜 강원도산인지도 의심스러운 그 옥수수, 더 정확히는 옥수수 비닐. 옥수수 비닐은 창작의 고통 끝에 ‘그럴듯한’ 강원도산 옥수수가 되었고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있어 보이는’ 강원도산 옥수수가 되었다. 홈페이지에 올라간 노란 옥수수를 보며 MD 팀장님은 고생했다며 좋아하셨지만 나는 그 노란 옥수수를 보며 씁쓸함만 느꼈다. 거짓말한 것은 없지만 거짓말친 기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 ‘옥수수 비닐’이 된 기분이다. 명함에 기획자이자 마케터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알맹이가 제대로 차 있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럴 듯한 직함이지만 이것만큼 속 빈 강정도 없는 것 같다. 보통은 클라이언트나 대표님의 오더에 따라 기획에 착수하고 디자인이면 디자이너, 영상이면 PD나 편집자의 손을 빌려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중간 매개자로서는 존재하지만 시작과 끝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중간 중간 내려오는 클라이언트와 대표님의 피드백은 일전의 기획을 엎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기획하고 마지막 제작물까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온전히 내가 만든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때로는 헐거운 내 기획이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려 반짝반짝 빛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그 의문은 더욱 커졌다. 연차가 쌓이면 알맹이가 생겨야 하는데 포장지만 더 두꺼워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다. 글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난 작가의 타이틀도, 이력도, 그 무엇도 없으니 내 글은 어떤 것으로도 포장 불가능하다. 게다가 상품페이지처럼 디자이너나 포토그래퍼의 손을 빌려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글을 써서 낼 때마다 발가벗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그 느낌이 싫지가 않다. 글은 미숙해도 존 온전히 ‘내 것’이라는 기분은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도 매주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을 것과, 일요일 마감을 못 지킬 것을 알면서도 ‘김봉현의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매주 날아오는 키워드와 하얀 워드 페이지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좌절할 것을 알면서도 변태처럼 꾸역꾸역 신청했다. 온전한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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