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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May 31. 2021

우리 사회를 독일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불행이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입시경쟁, 학비, 서열 등 한국에서는 당연한 고통인 것들이 독일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이도 잘 굴러가며 행복하기만 한 사회가 있다니 처음에는 무슨 신기루 같은 이야기인가 반신반의했습니다.

 저자는 독일 철학가인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책 <건전한 사회>에서 나오는 ‘정상성의 병리성’이란 용어를 언급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다음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너무도 병든 사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과연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이 질문을 듣고 나니 또 다른 물음표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이것을 생각해보려면 먼저 기준점이 있어야겠습니다. 저자는 바로 ‘독일이라는 거울’을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비춰가며 답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독일을 유토피아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와 독일은 냉전과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공통된 궤적이 있고 국가의 규모가 엇비슷하여 적합한 비교대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두 가지의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첫 번째로 한국의 민주주의의 민낯을  꺼내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불과 몇 년 전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에 나가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다며 자부심을 가져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건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의 괴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을 시민의 손으로 바꿀 수 있지만, 우리 일상의 여러 곳에서 여전히 권위적이고 병적인 문화가 팽배하게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권력자를 비판하기보다는 약자를 조롱하는 개그 프로그램, 아직도 군대식으로 군기를 잡는 대학문화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나의 잘못을 지적받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정치 민주화는 상당히 이루어냈지만 사회,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는 민주화는 아직 멀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이유로 ‘68혁명의 부재’를 꼽습니다. 68혁명이란 무엇일까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접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좁게 보면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일련의 변혁 운동을 말하고, 넓게 보면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세계 곳곳의 큰 변혁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프랑스에서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 크게 일어났고, 미국에서는 반전운동과 흑인운동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유명한 ‘프라하의 봄’도 모두 이 무렵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라마다 시차가 있고 상황도 달랐지만, 이 변화들은‘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핵심적인 구호로 설명됩니다.


 68혁명으로 세계는 자유와 해방을 향해 변화해갈 때 한국 사회 어떠했을까요? 안타깝게도 흐름을 역행하며 병영 사회로 재편되었고 그렇게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저자는 이로 인해 우리가 계속 경쟁과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로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대다수 구성원들은 억압의 문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정상성의 병리성’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불평등, 학벌, 기득권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이어 갑니다. 날카로운 논조에 거부감이 들다가도 이내 눈을 더 크게 뜨며 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자의 비평이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소속감에서 나온 거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큰 주제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통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통일'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 않나 혹은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학교 다닐 때 포스터 주제로만 고민해본 게 전부입니다. 종종 토론 프로그램에서 통일의 비용과 방식을 가지고 언급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직접 보고 겪었던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상식을 깨주려 합니다. 독일 통일은 생각보다 그리 체계적이지도 전략적이지도 않았다고. 비용이나 구체적인 방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상징적 이미지에 가려졌던 독일 통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동안 통일에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와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며 그래서 멀고 어려운 일이라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제 짐작과는 달랐던 독일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우리의 통일은 어떠할지 상상의 날개를 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통일이 된다면 당연히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우리 사회가 주도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이또한 단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식이나 선입견을 몰아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저 열려있는 여러 가능성으로 그려보면 어떨까요?

개인에게 통일이란 막연하고 커다란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항상 염두하고 있어야 합니다. 조용한 바다에 어느 순간 몰려오는 파도처럼 통일도 그렇게 시작될  있습니다. 만약  흐름이 시작된다면 우리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이며 우리의 삶도 그대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 파도 앞에서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통일을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건강한 민주사회로 거듭나며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는 저자의 열렬한 바람이 뜨겁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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