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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Sep 02. 2021

잘 지내니

한 장짜리 습작 소설

 

 창 밖으로 맞은편 건물의 간판들이 하나 둘 밝혀지는 게 보였다. 송화는 이제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신발과 외투를 벗고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늘어놨던 옷가지들을 한쪽으로 밀고, 햇반과 오뚜기 3분 카레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바로 옆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시골집에서 보내준 콩자반, 명이나물, 열무김치 등이 나란히 줄 맞춰 있었지만, 그녀는 음료칸으로 곧장 손을 뻗어 맥주 한 캔을 꺼내곤 냉장고를 닫았다.

 몇 개의 접시로 꽉 찬 아일랜드 테이블의 키높이 의자에 앉은 그녀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몇 개의 비슷비슷한 인터넷 뉴스들을 읽었다. 대부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미 본 소식이었다. 문득 며칠 전 가입한 인스타그램 앱을 터치해보았다. 상품마케팅팀 후배 미나와 커피 한잔을 하다가 추천받아 그 자리에서 가입까지 완료해두었는데, 이내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sns 계정이 없는 나를 외계인 취급하며 얼른 가입하라고 재촉하던 미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은 인스타가 대세라고… 그래 나도 해보지모.


 앱을 클릭해서 뒤적이다 보니 액정화면에 추천목록으로 여러 계정이 소개되었다. 아는 사람들의 사진도 눈에 띄었다. 전화번호부 목록에서 연결된 건가? 최근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 예전 회사 사람들, 업무로 만났던 사람들 그밖에 기억나지 않는 혹은 모르는  분명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심코 목록을 넘기던  남지현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 동기로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게 벌써 십여  전의 일이다. 지현이는 입사 동기들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아이 엄마가 되었고 지금은 경기도 어느 도시에 살고 있었다.   전까지만 해도 종종 소식을 주고받았었는데.  번은 지현이가 회사 앞으로 찾아와 점심을 먹기도 했었는데. 그리고는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액정 화면에 떠있는 지현이의 계정을 터치를 했다. 기혼이며 엄마인 이들의 sns가 대부분 그렇듯이, 아이들 사진과 음식 사진들이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 마치 사진으로 잘 정리된 육아 보고서를 보고 있는 듯했다. 화면 안에 그녀의 아이는 놀이터에서 뛰어다니거나 세발자전거 혹은 씽씽이를 타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기도 했다. 문구용품으로 보이는 것들을 늘어놓고 만들기에 열중하는 모습도 있었다. 지현이의 일상을 함께 하는 듯했다. 아이를 바라보고 챙기는 생활이라. 결혼도 육아도 딱히 자신은 없지만 나쁠 것 같진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의 숫자들과 씨름을 하고 와서 그런지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을 보며 편안하고 친근한 기분을 느꼈다.

 십 년 전 입사 초반에 동기 몇몇이 모여 자주 술을 마시곤 했다. 서로 꿈에 대해서 묻던 파릇파릇한 시절이었다. 송화의 대답은 매번 ‘현모양처’였다. 사실 취직 그 이후의 목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던 터라 그냥 우스갯소리로 둘러댄 것이었다. 지현이는 뭐라고 했더라. 송화의 기억 속의 지현이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정의감에 불타는 모습이었다. 술에 취하면 목소리를 높이던 것이 떠올랐다. 동기 스무 명 중 여자는 왜 세 명뿐이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리천장’이 보인다는 등 회사생활의 여러 답답함을 토로했었다.

 이후 둘의 삶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몇 년이 지나고 송화는 별일 없이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었다. 반면 지현이는 입사한 다음 해 술주정이 심했던 부서장의 부적절한 행동을 목격했다. 지현이는 망설임 없이 회사 감찰부서에 이를 제보하였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문제의 부서장이 회사를 나가긴 했지만, 지현이의 회사생활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직속상관을 내보낸 하극상의 주인공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후 일 년 간 두 번의 부서 이동이 있었고, 승진에서도 누락되었다. 송화는 무언가 불합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업무가 늘어나 한참 바쁘게 지내던 시기라서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회사 생활은 한다는 것은 마음의 시계를 빠르게 돌리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들 직급이 올라가면서 동기들의 모임도 흐지부지해졌다.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힘을 보탤 시간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일 년이 더 흐른 뒤 지현이는 결혼 소식을 전하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말이라도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고 했던 송화는 회사에서 일에 매진하며 십 년을 보냈고, 업무에 꽤나 의욕적이었던 지현이는 정작 주부가 되어 있었다. 삶은 기대에 따라 흘러가기 어려운 모양인가 봐. 송화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거나 만족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되어버리는 건가 봐. 송화는 잠시 다음 십 년을 궁금해하며 생각에 잠겼다.

 식사를 마친 송화는 지현이의 계정에 팔로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최근 게시물로 올라온 아이 사진 밑에 댓글을 달았다. “잘 지내니? 아이 많이 컸구나. 나도 인스타 시작했어. 이렇게 보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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