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 더 특별했던 날
4월로 결혼식 날을 잡았다.
우린 정원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작은 웨딩을 계획했다.
4월의 끝자락이니 정원은 초록빛이고 날씨는 화창한 봄날이리라.
푸르른 정원에서 많지 않은 친인척이 모여 결혼식을 지켜보며 흰 천이 깔린 원탁에서 여유롭게 코스요리를 먹는 것.
내가 꿈꾸던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웨딩이다.
결혼식 당일 비가 주룩주룩 오기 시작했다.
결혼식은 오후 5시였다.
나는 오전 내내 실시간으로 강수량을 체크했다.
"야외 결혼식에 비가 오다니. 망했네.. 식은 할 수는 있을까?"
속상함에 눈물이 났다.
식장에 들어서자 비는 더 세차게 내렸고 그리 고대하던 원형테이블은 정원에 설치조차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외에서 우산을 쓰고 결혼식을 진행하고 후에 식사를 실내에서 먹는 방법이 어떠냐고 한다.
아쉬웠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우산 색을 통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급히 사 왔어요."
식장 관계자분이 우산 뭉치를 들고 오셨다.
'뭐... 이 우산이라면 우산 쓰고 하는 결혼식도 그림이 썩 나쁘진 않겠네.'
투명한 우산이 여러 개 모이니 통일감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빠가 드는 우산을 함께 쓰고 비가 오는 정원의 버진로드를 천천히 걸었다.
생각해 보면 내 기억에는 아빠와 우산을 쓰고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없다.
아빠의 손을 잡아본 게 언제인지 조금은 쑥스럽고 어색했다.
아빠와 이렇게 한 우산을 쓰고 걷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남편은 버진로드를 걸어오며 노래하다가 노래가 끝날 무렵 내게 꽃을 건네주는 이벤트를 계획했다. 마이크와 꽃을 드느라 우산을 들 손이 부족했는지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노을의 '청혼'을 부르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열심히 노래를 한 남편의 축가에 하객들의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식사시간이 되자 해가 지고 정원에 조명이 켜졌다.
비가 드디어 멈췄다. 우린 비가 그친 정원에서 하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파티 같은 결혼식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비가 내리는 4월의 저녁 야외 결혼식은 꽤 로맨틱했고 특별했다.
화창한 봄날의 정원에서 하는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비가 내리는 봄날의 결혼식도 충분히 멋졌다.
아니 비가 와서 로맨틱한 분위기가 배가 됐달까.
세차게 내리는 비로 화장은 물론 공들여 세팅한 머리가 다 주저앉아 그날의 나의 모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리 둘은 결혼식을 떠올릴 때마다 "비가 와서 너무 좋았었지" 라며 그날의 특별한 기억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