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즉시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 켜 한켜씩 잊힌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부모는 대개 그들의 성인기를 통해서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조부모는 그들 인생의 마지막 3분의 1이라 할 수 있는 노년기를 통해서다. 그 외에 기억나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따끔거리는 턱수염에 지독한 냄새, 아마도 생선 냄새 같은 걸 풍기는 증조부 정도가 있지 않을까. 그다음엔? 사진들, 그리고 얼마간 우연히 발견하는 기록들일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지금까지 살면서 죽은 이의 모습을 세 번 보았다. 두 번은 가족의 죽음이고, 다른 한 번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였을 한 노인이다.
첫 번째 죽음은 큰할머니가 94세 나이로 주무시다 돌아가셨을 때이다. 지리산 산자락에 위치한 시골집에서 큰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의사가 오셔서 염을 해 주셨다. 큰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탓에 상주이신 아버지와 작은 숙부는 장의사를 도와 같이 염 해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돌아가시면 저런 색깔을 띠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죽음은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기 전 소파에 누워 있던 아버지와 마지막 나눈 대화는 "저 마트에 갔다 올게요" "그래... 셋째 매형이 오고 있으니 문 열어 놓고 가" "네~"
그리고 마트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아버지는 떠나고 없으셨다.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 해 의사의 마지막 사망 선고를 받고 아버지의 손과 얼굴을 만졌을 때 큰할머니와 다르게 차갑지 않고 아직 따뜻했다. 난 아버지가 살아 계신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을 정도이다.
세 번째 죽음은 중국에서 퇴근길에 뺑소니 차에 치어 돌아가신 이름 모를 할아버지이다. 어느 겨울날 저녁 퇴근 차를 타고 가던 중 창밖 너머 갓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가 보였는데, 순간 빠르게 우리 차를 추월하려는 검은 승용차가 갓길로 들어서면서 어둠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할아버지를 '앗' 하는 순간 차에 몸이 부딪히면서 할아버지가 공중으로 붕하고 튕겨져 나갔고, 찰나의 순간 내 눈과 마주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검은 승용차는 뺑소니로 도망갔고, 우리를 뒤따라 오던 차가 멈춰서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차는 멀어져 갔다.
나의 기억 속에 조부모는 아버지가 간간히 들려준 이야기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어릴 적 두 분 모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뒷간에서 천자문을 다 외울 정도로 머리가 좋으셨으며 할머니는 욕심이 많으셨다는 정도의 기억만 나에게 남아있다.
우리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큰아들만 3살 정도까지 할아버지를 보았고, 둘째와 셋째는 할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태어났기에 사진으로 본모습이 할아버지의 전부이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중학생 때 혼자서 고향을 떠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배움의 길을 선택해 독학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걸쳐 사업의 실패와 많은 인생의 역경을 딛고 살아온 삶을 얘기'... 하지만 아이들의 머릿속에 할아버지의 기억이 얼마나 남을 것인지 의문이다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얼굴도 한번 뵌 적도 없는 선조들의 제사를 모셔야 하고,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듯 나 또한 죽어서 자손들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어느 날부터인가 내 아이들에게 선산에 모셔 놓은 선조들의 얘기나 선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역사 속에 이름 석자를 남겨 놓을 수 있는 인물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될 가? 대부분의 우리는 살다가 죽으면 누군가의 기억에 속에 남아 기생하다가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욕망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나 또한 오늘도 많은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