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요즘엔 육아를 보다 쉽게 도와주는 물건이라면 없는 게 없다. 많은 식구들이 함께 아기를 길렀던 예전과 달리 엄마 아빠 단 둘이 주로 아기를 전담하여 양육하다 보니,하나라도 일거리를 덜어주고자 하는 니즈를 잘 파고든 물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엄마 품처럼 아기를 감싸 안아 흔들어주는 바운서, 언제나 일정한 온도로 물을 데워줘서 분유를 타기 쉽게 해주는 분유 포트, 소화가 미숙한 아기가 수유 후에 누울 수 있는 역류방지 쿠션 등... 이런 '템'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나 역시 출산 전부터 반드시 사야 한다는 '국민 템'들을 하나하나 사모았고 그중에 몇몇은 없었으면 아찔했을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다.
'있어서 나쁠 건 아무것도 없어. 없어서 고생하느니 사서 남는 게 났지.'
이런 것까지 굳이 사야 하나 할 때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로 스스로를 부추겼다.돈을 쓸 땐 무척 신중했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소중한 우리 아기를 위한 것이라면 별다른 고민 없이 과소비를 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비슷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기를 위한 것이라는데, 망설일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베이비페어를 가서 정신없이 쇼핑을 하던 때였다.
부스를 돌며 이것저것 사온 짐들이 가득해서 출구를 향해 걷고 있는데, 저만치샤워기 필터로 보이는 용품을 파는 부스 앞에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었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기생충 사진이었다.
'이샤워기 필터가 없으면 수돗물 유충을 거를 수 없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실 문구가 딱히 필요 없었다. 사람 키만 하게 뽑아놓은 징그러운 유충 사진만 보아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이 필터를 사지 않으면, 소중한 당신의 아기는 유충이 나오는 수돗물로 씻게 될 거예요. 이 필터를 반드시 사야 해요.'
우리는 아껴 쓰기 참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사서 남김없이 쓰는 것은 물건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능력껏, 아니 능력 이상으로 빚을 내서 물건을 사고 또 사고, 또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한때 건강 관련 방송을 보면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에 속는 사람들이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성인병에 고생하던 주인공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진귀한 무언가를 우연히 알게 되어 꾸준히 먹었더니 병이 완치되고 살이 빠졌다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북극에만 사는 새우로 만든 묘약 같은 것이다. 이어서 이 묘약은 의학적으로 특효가 매우 뛰어나다는 의사의 인터뷰가 나오고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 묘약이 깊게 각인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홈쇼핑 채널을 보면 너도나도 앞다퉈 그 묘약을 팔기 시작한다.
'건강에 해로운 걸 안 할 생각을 해야지. 건강식품 백날 찾아먹어 봐야 소용이 있겠어?'
누구보다 그런 방송에 잘 속아 넘어가는 우리 엄마에게 난 항상 시니컬하게 핀잔을 주곤 했다. 스스로를 똑똑한 소비자로 여겼던 그런 내가, 육아용품만큼은 홈쇼핑을 보고 '어머 이건 사야 돼. 이것만 있음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대.' 하고 순진하게 지갑을 여는 우리 엄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
'소중한 우리 아기한테 이게 꼭 필요하대. 이게 없으면 나중에 아플 수도 있대. 이건 꼭 사야 돼.'
"아이에게 득이 되는 백가지를 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해가 되는 한 가지를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해요.'
육아 전문 멘토 오은영 박사님은 항상 이 말을 강조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이 말을 지키기가 참 어렵다.
엄마가 늘 아기에게 최선을 다할지라도 갖가지 육아용품 광고들은 엄마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기어코 걱정거리를 만들어낸다. 마치 내가 본 수돗물 유충 사진처럼 말이다.
거기에 '골든타임'이란 말을 섞어 타이머까지 가동하면 엄마의 지갑을 여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아기의 두상을 골든타임 안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아기 베개 광고를 심심치 않게 자주 보았다. 광고 속에 있는 납작한 아기의 두상 사진은 꼭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지금 이것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예요. 소중한 우리 아기를 위해 이것을 꼭 사야 해요. 지금 당장. 시간이 없어요.'
나는 완벽한 엄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어떤 것이 진짜 필요한지 아닌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때가 많다. 다만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대로 아기에게 해가 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세상은 내 지갑을 열기 위해 내 마음속의 걱정거리를 끊임없이 파헤친다. 이만큼이면 아이에게 좋은 것들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안심할 때면 늘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속삭인다. 끊임없이 결핍을 일깨워주고 소비를 부추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