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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Jul 04. 2022

너를 사랑만 하기엔 24시간이 모자라

예쁜 우리 아기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웃음을 나누는 엄마의 모습.

나는 분유 광고에 나올법한 이 장면이 육아의 전부라고 착각했었다. 그리고 실전 육아에 돌입하고 깨달았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은 하루 24시간 중 1시간이 채 안될 만큼 짧다는 것을 말이다.




아기와 함께하는 엄마의 24시간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설국열차처럼 끊임없이 연료를 채워 넣고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나는 일찍이 아기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중 대부분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아기의 '생존'을 위해 쓰이고 있다.


아기가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끼니를 챙겨주고, 계절에 맞는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매일매일 빨래를 하고, 피곤하지 않게 잠을 푹 재워준다. 먹고 입고 자는 것만 신경을 써도 하루가 금방이다.

어디 그뿐일까? 용변을 보면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끼니 사이에는 간식을 챙겨줘서 부족한 영양을 채워준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손톱과 발톱이 뒤집어 까져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깎아주고 매일 씻겨주고 이가 썩지 않도록 양치까지. 죽 늘어놓는다면 아기가 '살아있는 것'만을 위해 하는 노동이 끝이 없다.


이처럼 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24시간을 오롯이 아기만을 위해 바치는 엄마의 하루가 모이고 모여 지금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의 체력과 시간은 아기의 생존을 위해 쓰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아기를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생존', 자세히 말하자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출처:위키백과

인간이 추구하는 욕구 중 가장 원초적인 생리적 욕구는 생존과 직결되는 욕구다. 즉, 엄마가 아기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시켜줘야 하는 욕구 것이다.

아기를 사랑스럽게 쓰다듬고 눈을 맞추기 전에 아기가 배고프지 않도록 끼니를 챙겨주는 게 먼저 재미있게 놀아주기 전에 빨래를 하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게 더 중요하다.


바쁜 24시간을 쪼개며 살다 보니 우선순위를 따지다 보면 아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예뻐해 주는 시간은 점점 뒤로 물러난다.

"어머 우리 덕순이 자깐만~"

잠깐의 틈새 시간에 아기의 사랑스러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데 깎지 않은 손톱이 보이고 솜털 같은 볼을 만지려는데 콧구멍을 막고 있는 코딱지가 보인다. 잠깐 왔다 아기를 예뻐해 주고 가는 손님들에겐 안 보이는 것들이 엄마 눈에는 빤히 보인다.




나는 엄마로서 늘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아기에게 미안하다

더 잘 놀아주지 못하고, 그 예쁜 눈을 더 자주 맞추지 못한 게 죄책감으로 남는다. 아기를 예뻐해 주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어쩐지 그걸로는 합리화가 잘 안 된다.


 '다른 누구네 엄마는 아기랑 별의별 놀이를 다 하던데... 우리 덕순이는 매일 장난감이랑만 혼자 놀고 있네.

'훌쩍 커버릴 텐데, 지금 더 잘 봐 둬야 하는데 나는 왜 항상 집안일에만 허우적거릴까...'

바쁘게 집안일을 하는 내 눈이 저 멀리 거실에서 혼자 장난감을 물고 있는 덕순이의 모습이 몹시 미안해지고 슬플 때가 있다.


바쁜 엄마의 하루 24시간 중 온전히 아기를 예뻐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야속할 만큼 짧다. 하루가 만약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었다면, 우리 아기를 좀 더 예뻐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똑같은 소리를 할 것 같았다.

'너를 사랑만 하기엔 24시간이 모자라.' 아니,

'너를 사랑만 하기엔 48시간에 모자라.' 하고 말이다.

사랑스러운 우리 덕순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하루였지만 어쩐지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나는 또 반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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