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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Jun 12. 2022

혼자 무릎을 찧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어느 평범한 아침이었다.

늘 그래 왔듯이 아침에 일어나 덕순이의 기저귀를 갈고 빨랫감을 한 데 모아 세탁기를 돌릴 참이었다. 덕순이가 보챌까 봐 마음이 급해져서일까, 그냥 덤벙대는 습관이 나온 것일까?

난데없이 무릎을 베란다 벽에 세게 부딪히고 너무 아파 주저앉았다. 혼자 다치고 우는 건 애들만 하는 건데 서른이 넘은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아파서, 그리고 서러워서.




나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물러 터져서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남편이 나를 부르는 애칭이 '두부'일까. 하얀 강아지한테 어울릴법한 이름이지만, 멘탈이 약한 내가 꼭 쉽게 으스러지는 두부 같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엄마는 단단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주어진 수많은 임무들을 완수할 수 없다. 아기가 배고프지 않도록 제 때에 식사를 챙겨야 하고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줘야 하고 푹 잘 수 있도록 재워줘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육아가 참 힘들다고 느낄 때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바로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때'인 것 같다. 아기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도 않고 계획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잘 먹고 잘 자던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심하게 보채는데 이유를 모를 때가 태반이고, 어떻게든 이유를 알음알음 찾아내서 달래줘보아도 노력한 만큼 고쳐지지도 않는다. 때문에 엄마는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되, 내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는 각오를 하고 단단하게 살아야 한다.


엄마가 된 나는 내 아기를 책임지기 위해 단단한 척을 하고 살아간다.

덕순이가 유난히 밥을 안 먹고 보채는 날에도 그다음 끼니를 준비하고, 잠을 깊게 못 자고 여러 번 깨는 날에도 늘 함께 일어나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안아주고 달래준다. 몸과 마음이 몹시 지친 날엔 힘들다고 사표를 쓰고 싶지만 내가 사표를 쓰면 우리 아기를 나와 같은 정성으로 맡아줄 사람이 없 때문에 다시 정신줄을 부여잡고 살아간다.

 

그렇다 해도,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두부는 두부다. 겉은 바삭해 보일지라도 젓가락으로 찌르면 푹 들어갈 것이다. 내가 그렇다.

씩씩하게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별 것도 아닌 일에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와르르 무너진다. 이제껏 내 마음이 한 생명을 책임지는 중압감과 무게를 견뎌온 만큼 단단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몸과 마음이 매일매일 조금씩 무너지는 줄 알면서도 고달픈 현실을 외면했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만 같았다.




나는 아기를 낳은 뒤부터 뼈마디가 무척 저리고 아팠다.

 손목 발목 안 아픈 곳이 없었는데 그중 무릎이 특히 아팠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운동한답시고 스쿼트만 주야장천 했던 적도 있었는데 덕순이를 낳은 뒤부터 그냥 앉았다 일어나는 것조차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조금 과장해서 이러다 이 나이에 인공 관절을 해야 하나 걱정도 들었었다. 

참다못해 정형외과를 가봐야지 하고 생각은 했었는데, 아기를 보면서 병원에 가는 게 참 쉽지가 않았다. 혼자 육아를 전담하는 평일에는 엄두도 못 내고 그나마 토요일 오전쯤이나 가야지 생각은 했는데,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면 오전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미루다 보니 어느새 병원 간다는 걸 깜빡 잊고 살았다.


그러다 펑펑 울었던 그날, 아팠던 것조차 잊고 살았던 그 무릎을 찧었다.

아파서 울음이 나왔고, 아픈 날 위해 병원 갈 시간조차 낼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막막해서 울음이 나왔다.

예전엔 그보다 더 심하게 다쳤을 때에도 울진 않았는데, 더 씩씩해야 할 엄마가 되어버린 나는 그렇게 가끔 사소한 일에도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감정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과민반응할 때가 몇 번 있었다.


혼자 무릎을 찧어서 울고, 얼려둔 밥이 딱딱하게 굳어 먹을 것이 없어 울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치우다 울어보았다. 남들이 보았을 땐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사람처럼 보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사소한 일에 불현듯 울음이 터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아기를 낳은 내 친구는 그냥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다 울었다고 했다. 또 어느 엄마는 아기를 씻기고 나오다가 울었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나처럼 사소한 일을 겪었겠지만, 마치 풀 숲에 숨겨진 작은 꼬리를 잡아당겼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끌려 나오는 것처럼 주체할 수 없 감정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비슷한 시련을 겪은 사람들은 공감으로 끈끈하게 묶여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혼자 무릎을 찧고 펑펑 울었던 나는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다 울었다는 친구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감사하게도 아기를 낳고 비슷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동병상련의 처지인 친구들이 참 많이 생겼다.


예쁘고 건강한 아기를 선물 받아 하루하루 감사해도 모자라지만, 욕심이 많은 나는 하나를 더 바라본다.

육아의 고충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주기를. 그래서 어느 날 사소한 일에도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기를.


"걔 있잖아. 아기 낳고 되게 예민해졌어. 좀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아."

아기를 낳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기를 아직 낳지 않은 친구들과 공감대가 줄어들면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이렇게도 말할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들었다.

그 조바심에 나는 이렇게나마 엄마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공감과 이해를 갈구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팍팍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해를 부탁본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닿는다면 고달픈 육아를 치르는 엄마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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