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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May 25. 2022

엄마는 쇼핑할 시간은 있어도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정신이 없다.

그중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은 더욱더 그렇다. 잠에서 깬 아기는 울거나 울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데 그 와중에 엄마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아기의 눈치를 봐가면서 밀린 집안일을 서둘러해 보지만 악을 쓰고 보채는 아기에게 우선순위가 밀리곤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엄마의 식사나 용변 같은 개인적인 용무는 순위권 밖으로 아예 밀려나간다. 엄마는 제대로 차려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맘 편히 용변도 못 보고 아기를 돌본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의 삶은 늘 고달프다.


아기를 낳아 기르기 전만 해도 나는 '먹지도 씻지도 싸지도 못하는 삶'이 믿기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시간이 남아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아기를 낳기 전, 꿈처럼 행복했던 출산 휴직 시간 동안 나는 하루 종일 무료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했던지라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혼자 있는다는 게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며 부지런을 떨어도 시간은 늘 느리게 흘렀고 지루한 시간을 흘러 보내려고 안 하던 온라인 게임도 해보곤 했다.

아기가 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은 온 정신을 아기에게 쏟느라 힘들겠지만 아기가 잘 때 밀린 집안일도 하고 개인적인 용무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충분히 다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안일했던 내 착각은 덕순이를 기르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육아는 보고 들은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의 간극이 하늘과 땅 차이다. 아기를 낳고 난 후에야 나는 왜 아기가 자는 동안 부지런하게 일을 할 수 없는지 알게 되었다. 일명 '등 센서'란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설거지, 빨래, 청소... 이런 집안일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아기를 안고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기를 안고 하자니 자세도 영 불편하고 위험하기도 하고 잠이 든 아기가 깰 수 있다.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이 매일매일 하지 않으면 쌓일 수밖에 없는 집안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기가 보채지 않고 오롯이 엄마를 기다려주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내 딸 덕순이는 태어난 지 16일째 되는 날, 조리원을 퇴소하고 우리 집에 왔다. 그날부터 덕순이는 200일이 넘도록 꽤 오랜 시간 동안 낮에 누워서 잠을 자지 않았다. 낮에 잠이 든 덕순이를 눕히려 하면 등 센서가 삐뽀삐뽀 울리는 것처럼 덕순이는 눈을 번쩍 뜨고 집안이 떠내려가라 울었다.

덕분에 나는 항상 덕순이와 붙어있었다. 덕순이가 낮잠을 잘 때면 아기띠를 하고 안아재웠다. 중간에 눕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괜히 눕혔다가 깨우느니 처음부터 끝까지 내 품에서 재우는 게 더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덕순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 동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쌓인 집안일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설거지, 빨래, 청소... 하지만 무엇 하나 곤히 잠든 덕순이를 안고 쉽게 할 만한 일들이 없었다. 덕순이가 자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파에 기대 누워 같이 잠을 자거나 핸드폰으로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는 것뿐이었다.

 덕순이가 잠이 든 지루한 낮잠 시간 동안 나는 그렇게 밀린 집안일을 그대로 외면한 채 아이를 안고 자잘 자잘한 오락거리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덕순이가 깨면 엄마 품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뒤로 한채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했다.


'혼자 놀게 해서 미안해 덕순아. 하지만 네가 낮에 혼자서 잠만 자준다면... 엄마는 그동안 밀린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서 네가 깨면 최선을 다해 너 옆에만 있어줄 텐데. 그렇게는 안될까?'


수도 없이 덕순이에게 부탁을 해보았지만 태어난 지 일 년도 안된 어린 아기가 내 말을 이해해줄 리가 없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면교육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심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이 고난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덕순이가 조금 몸집이 컸을 무렵부터 나는 덕순이를 뒤로 업어재웠다. 아기를 업으면 앞으로 안을 때보다 두 팔이 훨씬 자유로워져서 조심조심하며 밥도 먹고 소소한 집안일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자 덕순이는 혼자서 침대에 누워 자기 시작했다. 수면교육을 한다고 모질게 울리지 않았는데도 그냥 알아서 잘 자게 되었다.

(덕순이를 업혀 재울 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덕순이가 침대에서 자면 주방으로 나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이게 다 혼자서 잘 자주는 덕순이 덕분이다.)





'사람들이 말이야. 내가 카톡 답장이 빠르니까 애 기르는 게 쉬운 줄 알아. 시간도 많은 줄 알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내 친구가 이렇게 투덜거렸었다. 아기를 기르기 전의 나였더라면 나도 몰랐겠지만 지금의 나는 내 친구의 입장이 무척 이해가 되었다.


'그래 맞아.

아기띠를 메고 아기를 안아 재우는데 카톡 답장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핸드폰으로 쇼핑하는 것도. 시간이 안 가는데 그거라도 해야 되거든.

하지만 청소할 시간은 없어. 빨래할 시간도, 내 밥을 챙겨 먹을 시간도, 심지어 용변을 볼 시간도 없어. 아기를 안고 할 수 없잖아.

이건 부지런하냐 게으르냐의 문제가 아니야. 아기가 얼마나 엄마를 도와주느냐의 문제야. 혼자서 잘 놀고 잘 잔다면 집안일쯤이야 매일매일 잘 끝낼 수 있겠지.'


덕순이는 아직 완벽하게 혼자 잘 놀고 잘 자는 아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엄마임을 실감한다. 아직은 내 품에서 보살펴야 할 예쁜 아기를 기르는 엄마라고 말이다. 단지 누군가가 '왜 엄마들은 쇼핑할 시간은 있는데 항상 바쁘다 그래?'라고 묻는다면, 앞서 말한 이야기들을 침 튀기며 설명하며 세상 바쁜 엄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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