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개발을 밥벌이로 사는 나는, 적어도 일을 할 때만큼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테스트를 할 때면 (거의 항상)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는데 우리 개발자들은 그것을 버그(Bug)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버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버그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디버깅(Debugging)이라 불렀다.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개발자들이라면 항상 새겨두어야 하는 말이다. 아무리 어려운 버그일지라도 찾고 또 찾다 보면 결국 명확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디버깅은 늘 골치 아프고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참 편한 세상에 살았구나 싶다. 지금 내 품에 안겨있는 이 디버깅을 할 수 없는,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그램 같은 아기를 바라보면 말이다.
이제 만 한 살이 다 되어가는 우리 딸을 키우면서 나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아기를 디버깅하려 하지 말 것'이다.
우리 딸은 백일이 되기 전부터 통잠을 자서 엄마를 감동시켰던 효녀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잘 먹고 잘 자는 우리 아기를 바라보며 육아가 생각보다 수월하다는 큰 착각에 빠졌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4개월이 될 무렵부터 우리 딸은 변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도 수시로 깨서 울음을 터트렸고 그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아이를 달래느라 밤을 꼬박 지새웠다. 도대체 왜 우리 딸이 깊게 잠을 못 자게 됐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던 나는 맘 카페를 뒤져가며 비슷한 경험담을 찾으려 애썼다.
'아, 4개월 차가 원래 급성장기라 아기들이 자주 깬대.'
그럴듯한 원인을 찾았을 때 무릎을 탁 치며 기뻐했다.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책이 보였기 때문이다. 4개월 차가 원래 그런 시기라면 5개월 차, 6개월 차가 될수록 점점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내 딸은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개월 수가 올라갈수록 잠을 잘 자기는커녕, 더 자주 깨는 날도 잦았고 그렇게 통잠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또다시 이유를 찾아 헤맸다.
'다른 진짜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것만 찾으면 다시 원래대로 통잠을 잘 거야.' 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원더 윅스, 이앓이, 배고픔... 무수히 많은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좌절했다.
'이게 진짜 원인이었어!' 하며 기뻐했던 오늘의 정답들이 내일이 되면 오답이 되어있었다. 매일매일 매시간 아기는 변했고 육아에 있어서 나의 디버깅 능력은 이를 따라오지 못해 한참 뒤처져있었다. 그리고 숱한 좌절 끝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토록 모자란 능력으로 계속 우리 아기를 디버깅하려 했던 것은 바로, 우리 아기의 문제들을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었다.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영원히 이 문제들을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몹시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우리 아기를 디버깅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인을 알 수도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렸다. 그냥 날이 좋아서, 혹은 날이 좋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보면 반대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카시트에만 앉으면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소리를 내지르며 울었던 내 딸이 이젠 창문 밖을 구경하다 스르르 눈을 감고 얌전히 잠을 자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정답은 내일의 오답이었다.
내가 또 바보같이 디버깅을 할 때면 우리 아기는 나를 가르치듯더욱더 복잡하고 어려워져 있었다. 그래서 난 내가 찾아낸 정답을 두고 오늘은 기뻐하고 내일은 좌절했다.
'그렇게 365개의 정답을 찾아 헤매다 보면 어느덧 일 년이 지나고 너는 한 살만큼 더 커져있겠지. 그러고 나면 지금의 힘듦은 추억으로 덮여 그리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