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별 일 아닌 것들에도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짓누르고 조바심을 내곤 한다.
우습지만 덕분에 요즘 사람들은 다 한다는 주식도 손을 못 대서 한 번도 돈을 벌지도 잃지도 않았다. 그저 개미 눈곱만큼의 이자를 받아가며 예적금만 착실히 쌓을 뿐이다. 혹시라도 주식을 샀다가 나의 소중한 돈이 깎이는 것을 멀리 내다보며 차분히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늘 멀리 내다보며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육아한 참 어려운 난제다. 오늘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때 나는,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절망하거나 머리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금단의 열매'를 기어코 먹어가며 내일의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내일 괜찮을지 어떻게 알아. 난 망했어."
"이런 게 안 좋다고 해도 오늘만 무사히 넘어갔다면 내일 일은 또 내일의 내가 버텨낼 거야."
엄마인 내 시야는 너무 좁고 좁아서 안개가 자욱한 어느 가시거리 1m의 숲 속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조금만 멀리 보면 찾을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이렇게 헤매는 말만 되뇌었다.
나는 내 딸과 매일매일 세 번의 전쟁을 치른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먹일 때마다 비장한 각오로 수저를 들고 전쟁에 임하지만 먹기 싫어 몸부림치고 우는 아이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같이 울거나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버린다.
'아이가 식사를 거부할 때에는 간식을 일절 주지 말고 바로 치워버리셔야 해요. 그래야 아무리 반항을 해도 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엄마가 식사의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아이는 더욱더 자기 맘대로 행동하고 엄마는 그대로 끌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밥을 안 먹는 아기들을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영상을 찾아보면 소아과 의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배고프면 먹는다.'였다.
아이의 생떼를 이기지 못하고 간식을 준다거나 영상을 보여주면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먹이다 보면 아이는 달콤한 간식과 재미있는 영상의 유혹 없이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을 점점 더 어려워하게 된다. 때문에 아이가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해하거나 짜증을 내도 '더 좋은' 보상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나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론만 알고 덤비기엔 내 아이가 만만치 않은 적수라는 사실이었다.
밥을 먹기 싫어서 소리를 지르고 우는 아이가 장난감만 쥐어주면 한참 동안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영혼 없이 입을 벌려주었다. 지금 당장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는데 나는 그 유혹을 참기가 힘들었다. 짜증 내는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면 장난감 대신 밥을 모두 치워버려야 했지만 우리 딸이 배고파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더 약하게 만든 건 또래보다 작은 우리 딸의 체구였다. 2.84kg로 원래 작게 태어난 아이인 데다 요새는 특히 더 몸무게가 더디게 오르는 게 무척 조바심이 났던 터라 한 끼 한 끼의 식사가 나에겐 너무 절박했다.
결국 나는 아이가 밥을 먹기 싫어서 몸을 베베 꼬고 짜증을 부릴 때마다 한 입만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장난감을 쥐어주고, 영상을 틀어주고, 좋아하는 과자를 물려주며 달랬다. 그도 안 통하면 아예 아이를 의자에서 풀어주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 입만'을 구걸했다. 그것마저도 안 통하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천불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거나 애꿎은 싱크대에 수저를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며 화풀이를 했다.
'때가 되면 언젠간 다 먹습니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마세요.'
일찍이 우리 아기처럼 안 먹는 아기를 겪었던 선배 엄마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당장 오늘 전쟁을 치르는 나의 시야는 이 조언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좁았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 당장 이 순간만을 모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머리로는 해선 안 되는 걸 알지만 지금 이 순간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안 먹는 아기를 먹이기 위해, 안 자려는 아기를 재우기 위해 금단의 열매를 먹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게 그런 동족상뇨의 방법들은 그 순간을 모면해주는 대신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든다. 결국 계속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내 딸을 키우기 전 나는, 식당에서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밥을 먹이는 엄마 아빠를 보면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혼자서도 밥을 잘 먹도록 아이의 버릇을 잘 들여놔야 지하며 근거 없이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시간이 훌러 매일 내 딸과 식사 전쟁을 치르는 중 어느 날, 식당에서 비슷한 엄마를 보았다. 밥을 먹기 싫어서 몸을베베꼬는 아이와 태블릿으로 영상을 계속 바꾸어 틀어주고 수저를 대령하느라 바쁜 엄마의 모습. 그 모습에 나와 내 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해와 공감을 넘어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만 같았다.
'저 엄마도 저러고 싶진 않았겠지. 하지만 오죽하면 저럴까? 저 밥 한 숟갈이 얼마나 절박할까?'
그래서 나는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엄마가 부럽다.
마음 같아선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 어떻게 하면 평정심을 갖고 시야가 넓은 육아를 할 수 있는지 얘기를 풀어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어느 흔한 롤플레잉 게임들처럼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 내다 보면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 나도 노련한 엄마가 되어 있기를, 그래서 내 시야도 지금보다는 더 넓어져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