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내 뱃속에 같이 있었을 때부터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언제 잠을 자고 어디를 가든지 항상 그 고민의 중심에는 내 딸이 있었다. 슬프게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내 이름 석자보다는 누구누구 엄마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다.
나의 모든 체력과 시간을 다 쏟아부은 덕분일까? 아니면 본래 타고는 본능일까?
우리 딸의 세상의 전부 또한 나였다. 개월 수가 차면서 보이는 게 많아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엄마인 내가 저 조그만 아이의 온 우주라는 사실은 더 분명해졌다.
그것은 잠결에 손을 더듬어가며 나를 찾는 손짓, 한참을 혼자 재밌게 놀다가도 뒤돌아 내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나 확인하는 눈망울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우주라는 것은 참 신비로운 일이다.
여태껏 살면서 그런 무한한 사랑을 받아본 게 몇 번이나 있는지 헤아려보면 알 수 있다.
숱한 연애를 해보았지만 우주가 될 만큼 사랑을 받은 적은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리고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는 연인과의 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평생의 우정을 다짐한 친구 사이도 아쉽지만 서로의 우주가 되진 못했다. 한때 나의 일상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각자 다른 일상을 찾아가고 멀어졌다. 그저 가끔씩,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하는 인연으로 만족해야 했다.
누군가의 우주가 된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 자식 사이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본능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딸이 돌이 지났을 때 어느 정도 키가 큰 것 같아 유모차를 바꾸었다.
지금까지 썼던 유모차는 내 딸이 백일쯤이 되었을 때부터 쓰던 거라 안정적이지만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좀 크면 덜 안정적이지만 가벼운 휴대용 유모차를 많이 쓴다길래 서둘러 바꾼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그동안 썼던 유모차는 나와 아기가 마주 보는 방향이었는데 새로 산 휴대용 유모차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도 나처럼 바깥을 바라보고 앉는 구조였다.
뭐 대수겠냐먄, 나는 순간 서운해졌다.
산책을 하면서 내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서로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주던 장난 짓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몹시 슬퍼졌다. 나에겐 내 딸을 바라보는 매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슬픈 것은 유모차의 방향뿐 아니었다.
머지않아 난 다시 회사에 복직할 예정이다. 그동안 하루 24시간을 항상 같이 붙어있었던 우리는 이제 서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달여 전부터 어린이집 등원을 하면서 처음엔 1시간, 그다음엔 2시간, 지금은 3시간씩 서로 떨어져 지내보고 있다.
나는 마음이 참 아팠다. 아이를 갖기 전 내 일상을 다시 되찾는 것은 기뻤지만 더 이상 내 딸을 온종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다행히 내 딸은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을 해서 매일매일 누구보다 신나게 놀고 돌아오지만 나는 내심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 아닌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는 걸 대견해해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내 딸을 빼앗긴 기분까지 들었다.
나의 사랑이 유난 맞은 이유는 간단했다. 내 딸이 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내딸의 세상의 전부가 나인 것처럼.
어느 글에서 봤는데,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기는 엄마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한다고들 한다. 아기에게 엄마가 없는 삶이란 상상할 수가 없다. 아기에게 엄마는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삶의 원천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받는 행복한 엄마다.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내 딸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온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나는 어제처럼 내 딸과 잠깐씩 헤어져있는 지금 이 순간, 앞으로 더 긴 시간 동안 반갑게 이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본다.
우리가 하루 24시간을 온종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우리 모두 씩씩하게 잘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