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물음이 나를 씁쓸하게 할 때
누군가 그랬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예를 들어 "내 꿈은 PD가 되는 것입니다."가 아니라,
"내 꿈은 PD가 되어 제가 만든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과 행복하고 싶습니다."랄까.
그 과정해서 단순한 장래희망을 넘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왜 그것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해서.
어떤 모습으로든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꿈꾸며 사니까.
명절 때만 볼 수 있는 오랜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에어비앤비에 모여 대화를 나누던 중,
얼마 전 일터를 옮긴 친구 W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비교적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데다 몇 년 째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살아 신경이 쓰이는 친구였다.
원래도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지만 직전 날 타 지역으로 모든 짐을 옮긴 W는 웃으면서도 어딘가 힘이 빠져 보였다.
남들 다 하는 부동산, 주식 얘기 하나 없이 고등학교 추억, 연예인, 직장 욕, 친구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참 우리는 변한 게 없다 하며 웃던 중 W가 질문을 툭 던졌다.
"나는 왜 살까?"
일순간 다들 입이 얼었다. W가 엄청난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가볍게 넘길 말은 아니었다. 단순히 힘들어하는 친구를 동정해서가 아니었다. 십 몇 년이 넘도록 변함없는 관계들, 나름대로 자리잡은 경제적, 사회적 상황, 그닥 새로울 것도 재미난 것도 없는 반복되는 일상은 모두에게 동일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먼저 입을 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항상, 그리고 우울과 불안이 나를 덮칠 때 특히 더 스스로에게 묻고 물었던 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왜 살까 하고 이유를 찾지말고, 어떻게 살까를 고민해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내가 사는 것에 대해 굳이 이유를 달아서 단정짓지 말자는 것이다.
정해진 이유가 없다고 한들, 지금 내가 사는 삶은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한 때 꿈꾸었던 방송PD가 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나는 불행하지 않다.
심심하고 보잘 것 없다 여겼던 일상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이벤트를 기획하며 사람들과 행복해 한다.
가슴 벅찬 진귀한 행복은 아닐지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잔잔히 나를 웃게 하는 그 행복도 나는 좋다.
"너를 웃게 만드는 일, 너를 건강하게 하는 일, 너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다보면, 왜 사는지 이유가 나올지도 몰라. 하지만 이유를 찾는 게 목적이 아니야. 네가 그 과정에서 행복한 게 더 중요한 거야."
가끔 아무런 변화 없는 일상에 익숙해질 즈음, 내 가슴 속에서도 '나는 왜 살까?'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목적이 있어야될 것 같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그 강박에 사로잡히면 그 과정에서 나를 잃어버리기 쉽다. 그렇지만 진짜 나 자신이 없는 내 삶에서의 목적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나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하지만 가끔은 '나'에게 부여한 의미와 책임감을 의식적으로 덜어내려 노력한다. 가늠도 안되게 넓은 우주에서 극도로 짧은 시간을 사는 나. 어찌보면 우주의 먼지 같은 나. 그런 내가 굳이 엄청난 이유가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이왕이면 재밌고, 편안하고, 행복한 먼지가 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행복해지면, 그 이후는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잘 흘러간다.
그때부터는 우주의 먼지가 아닌, 행복한 나의 삶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