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깜짝 놀랐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얘들아, 우리 코로나 놀이하자!"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코로나 놀이라니! 나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아이들이 어떻게 놀이를 하는지 지켜보았다. 코로나 놀이는 이랬다. 술래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되어 친구들을 잡으러 다니고 잡힌 아이는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가 되어 또 다른 친구들을 잡으러 다니는 놀이었다. 마스크를 낀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서로 쫓고 쫓기면서 코로나라는 놀이를 신나게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의 옛 시절이 오버랩되었다.
90년 초에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하교 후 언제나 고무줄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고무줄이 높이 올라갈수록 다리를 힘껏 찢어 고무줄을 넘어야 했다. 나는 고무줄 놀이를 잘하는 편이어서 만세, 만만세라는 높이까지 혼자 살아남고는 했다. 당시 여러 가지 노래를 바탕으로 고무줄 놀이가 진행되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고무줄 노래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앞으로 앞으로~'라고 시작되는 노래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섭고 슬픈 노래인데 그 당시 나를 포함한 여자아이들은 신나게 이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전진하고 고무줄을 뛰어넘었다.
시간이 지나 이 노래에 대해 찾아보니'전우야 잘 자라'라는 군가였다. 그런데 왜 군가가 아이들의 고무줄 놀이의 노래가 되었을까?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아이들은 놀이를 찾아야 했고 동요 대신 군가가 울려 퍼지는 상황을 놀이로 만들어 무서움을 떨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 당시의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노는 모습을 상상하니 슬프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이들 사이에서 '전우의 시체'라고 불리던 고무줄 노래는 전쟁이 끝나고 40년이 흐른 90년대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나의 어린 시절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고무줄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라 이 노래는 땅속 유물처럼 되어버려 졌다. 그런데 내가 놀이터에서 본 코로나 놀이는 '전우의 시체'노래가 유령처럼 다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몇 달이면 끝나겠지 했던 일이 팬데믹이 되고 끝이 보이지 않은 채 우리 일상을 잠식해 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의 일상은 더 힘들어진 것이 아닐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웃고 떠들고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이 코로나에 전염될까 봐 거리를 두고 서로의 얼굴을 온전히 알아볼 수도 없게 마스크로 싸매고 있는 상황이 어이없이 슬프다. 하지만 코로나 놀이를 만들어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은 어찌 보면 어른보다 더 강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암울한 현실도 긍정적이고 즐겁게 놀이로 승화시키니까 말이다.
그래 얘들아, 그렇게 신나게 놀아라.
코로나 바이러스 그까짓 거 너희들 놀잇감밖에 안된다.
이다음에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추억이 되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니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덜 해지고 아이들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것 같다. 하루 빨리 더 재밌고 신나는 놀이로 코로나 놀이가 잊혀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