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 던 곳은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언제든지 산에 놀러 갈 수 있었고, 길거리는 비가 와도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로수로 즐비하게 늘어서있던 작은 도시였다. 15살이 되던 해 그곳을 떠나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삭막한 큰 도시에 살게 되었지만 내 마음속 한켠에는 무성한 나무들이자리 잡고 있었고 항상 그 나무들을 그리워했다.
결혼을 하면서 집을 구하다가 아파트 단지안에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집 베란다에서 그 나무를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민하지 않고 집을 계약했다. 게다가 바로 뒤로는 낮은 산이 있고 산책하기 좋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이렇게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단점들을 모두 상쇄시켰다.
나는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소중함을 더 깨닭게 되었고 아이에게 나무며, 꽃이며,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또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놀던 경험과 추억들이 살아가는데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아이에게 자연을 선물하고 싶었다.그래서 계절마다 변화하는 나무를 보며 이야기하고 내가 느끼는 감동을 전달했다. 또 뒷산도 시간이 될 때마다 올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동안 변화하는 산을 보는 즐거움을경험하고 다양한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사계절 내내 동네 뒷산을 오르며 자연을 느낀다
더불어 자연에 관한 그림책도 많이 보여주었다. 그림책을 통해우주와 지구, 계절, 날씨, 동물과 식물 등 아이가 매일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자연이고 우리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알려 줄 수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을 보호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물과 전기를 아끼고 쓰레기는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고 버릴 때는 분리수거를 하고 종이와 휴지를 아껴 쓰는 등 아이는 사회규칙을 배우고 실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전 온 가족이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차를 타고 놀러 갔다. 그날은 먹구름이 잔뜩 껴있더니 얼마 안 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리는 비를 보며 말했다.
"비가 오니까 나무들이 좋아하겠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첫째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엄마, 비도자연에게 좋지만 제일 좋은 게 뭔지 알아요?"
나는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다. 답을 알 수 없었다.
"뭔데?"
첫째는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랐고 아이 말에크게 수긍하며 맞장구를 쳤다.
"와, 정말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네."
며칠 전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만들어온 액자에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연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행복한 자, 000(자기 이름을 씀)' 이 문구를 보자 내 마음이 뭉클해지며 최근 아이와 함께 본 <Florette>라는 그림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써툰 글씨로 쓴 아이의 마음
그림책 속 여자아이는 건물만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 아이는 자신의 정원을 만들고 싶지만 그럴 공간도 없다. 그러다 빈 공터를 발견하고 그곳에 꽃이며 나무를 그려보지만 비가깨끗이 지워버린다. 어느 날 이전에 살던 동네에있었던 새를 발견하고 따라가다가 커다란 온실을 발견한다. 그 온실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는데 틈 사이로 작은 풀이 삐죽 나와있다. 아이는 그것을 가져와 화분에 심고 빈 공터에서 키우기 시작하는데그 모습을 동네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본다. 마지막 장면은 삭막했던 그 빈 공터가 어느새 식물들과 아이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으로 끝난다.아마 다른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식물들 속에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담긴 마지막 장면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자연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에서 몸과 마음이 멀어진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아직 자연의 속성을 잃지 않고 있다. 사람은자연 속에 있을 때 행복하다.나는 아이들이 자연과 가까이 자란다면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랄 것이라고 믿으며 다른 어떤 교육보다도 자연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어디에나 있고 가까이 있다. 오늘은 아이와 하원을 하며 비 온 뒤 나뭇잎들의 색이 더 푸르러졌음을 이야기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