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무지개 Dec 20. 2018

육퇴여, 오라

육아도 워라밸이 되나요?

 # 7시

  좀 더 잤으면 좋겠는데 요즘 정확히 7시만 넘으면 뒤척이기 시작한다. 아빠의 출근 준비 소리 때문인지 뒹굴거리다가 엄마~하고 부른다. 조금 더 누워있고 싶다. 눈 감고 자는 척을 할까. 아니다 일어나자. 일찍 일어나야지 낮잠도 일찍 자고 밤잠도 일찍 자지.


# 8시

 컨디션이 좋으면 거실로 나와 인형 친구들과 놀기 시작한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울면서 안아달라고 한다. 그래 좀 더 크면 안아달라고도 하지 않을 테니 꼭 안아주자. 아이가 무거워져서 오래 안고 있으면 다리가 저리고 팔도 후덜 거리지만 그래도 내 품에 안겨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안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 9시

  오늘은 잘 먹으려나. 잘 먹는 아이가 아니라 항상 밥을 주기 전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우선 좋아하는 반찬으로 유인하자. 인형 친구들도 같이 먹자고 동원하고. 다행이다. 잘 먹는다! 첫 번째 미션 클리어! 오늘 시작이 좋다. 하지만 10분도 앉아서 먹지 못한다. 그래 두 돌도 안된 아이가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서 먹는 게 더 이상해. 이게 정상이야.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자.

#10시

  이제 내가 배가 고프다. 근데 애 밥 먹이느라 힘이 없다. 밥 차리기도 귀찮다. 국이라도 있으면 말아서 후루룩 먹어버리자. 이런 국이 없네. 그럼 빵으로 우선 허기를 채우자. 이렇게 오늘도 빵을 먹는다. 아직 살이 다 안 빠졌지만 빵을 끊을 수 없다. 우선 먹고 살 빼는 것은 훗날을 기약하자.(훗날이 오겠지?;;)


# 11시

  미세먼지 나쁨. 아니면 덥던가 춥던가 비가 오던가 바람이 불던가. 당최 마음 편히 나가서 뛰어 놀 날이 별로 없다. 날씨가 좋은 날은 무조건 나가야 된다. 놀이터로 공원으로 산으로. 오늘은 춥다. 집에서 책도 읽어주고 같이 주방놀이도 하고 찰흙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자.

내일은 문화센터 가는 날이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해하고 다른 또래 친구들과 선생님도 만나는 경험을 해야 되니까. 문화센터에도 가야지. 근데 시간 맞춰가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외출 준비하는데도 30분은 걸린다. 시간을 맞춰서 갈려면 내 얼굴에 로션 하나 여유 있게 바를 시간이 없다.


# 1시

  아! 벌써 또 먹을 시간이다. 점심은 뭘 줘야 잘 먹으려나. 볶음밥, 비빔밥으로 한 그릇 뚝딱 먹으면 좋으려 만. 몇 번 잘 먹다가 안 먹는다. 또 반찬으로 유인하자. 그리고 책을 보자고 하고 자리에 앉히자. 책 보면서 책 속 친구들 한 입씩 주고 자기도 먹는다. 이 작전도 성공이다. 빨리 먹이고 낮잠 재워야 한다.


# 2시

  이제 낮잠을 재워야 한다. 쉬는 시간이라고 같이 침대에 누웠더니 자기는 안졸리다고 방을 탈출한다. 엄마는 잘 거라고 하니까 일어나라고 난리다. 오래간만에 허리 피고 누웠더니 일어나기가 싫다. 계속 엄마도 나오라고 한다. 거실에서 좀 놀다가 다시 2차 시도. 다행히 방을 탈출하지는 않는다. 침대에서 베개 붙잡고 논다. 그러기를 30분. 이제 슬슬 졸리나 보다. 자장가 5곡 정도 부르니 잠든다.

# 3시

  아침에 빵 하나 먹고 못 먹었더니 힘이 없다. 근데 밥 차려 먹기 너무 힘들다. 그리고 1분 1초가 아까운 아이 낮잠을 시간을 밥 차리고 밥 먹는데 소비하기가 너무 아깝다. 밥과 반찬을 최대한 간단하게 해서 10분 만에 클리어하자. 드디어 자유시간이다. 티타임도 가지고 싶고 TV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글도 써야 되고 그림도 그려야 된다. 저녁 식사 준비도 해야 되고 집안 청소도 해야 되고 친구한테 온 카톡에도 대답해 줘야 된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우선 차를 끓이고 TV를 켜고 카톡 답을 하고 책을 보자. 이제 한 시간 남았다. 글을 좀 쓰고 그림도 하나 그리자. 이제 30분 남았다. 저녁 준비를 하자.

  엄마~~
일어났다.


# 5시

  침대로 가니 눈뜨고 뒹굴거리고 있다.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예뻐 죽겠다. 다리는 아래로 쭉쭉 펴주고 팔은 위로 쭉쭉 펴주고 볼에 뽀뽀를 해준다. 이제 밖으로 나와서 의자에 앉아서 꼭 안고 있는다. 밖은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아이는 다시 집안 곳곳을 누비며 논다.


# 6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배가 고픈지 저녁은 밥 한 그릇 뚝딱이다. 그래도 밥 먹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 처음에는 앉아서 먹지만 이내 의자에서 내려간다고 한다. 그래 반은 먹었으니 내려가렴. 남은 밥을 먹이려고 아이가 노는 곳으로 가서 한입 두입 먹인다. 아이는 잘 받아먹는다. 놀면서라도 밥을 먹어서 다행이다. 


# 7시

  문 여는 소리가 나자 아빠~~ 하고 외친다. 아빠가 퇴근했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하자 아이는 부엌으로 달려온다. 요즘 제일 재밌는 곳이 부엌이다. 설거지도 같이하고 엄마 요리하는 것도 구경한다. 아빠 엄마가 저녁을 먹으려 하자 아빠 엄마 사이에 앉아서 어른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아빠 엄마 먹으라고 준다. 자기 밥은 안 떠먹으면서 엄마 아빠 밥은 떠 먹여주고 싶나 보다.

# 8시
  아빠가 목욕을 시켜주는 시간에 설거지와 집안 정리를 한다. 목욕시켜주는 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무거워진 아이를 씻기고 욕조에서 안고 나와서 물을 닦이고 로션을 바르고 옷 입히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목욕까지 끝나면 오늘 할 일은 마무리이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아이는 엄마가 데워 준 고소한 우유를 먹는다. 먹을 때는 세상 조용하다.

  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난다. 다 마셨나 보다. 이제 자기 전까지 아빠랑 놀으렴. 엄마도 씻어야겠다.


# 9시

  요즘 재밌는 드라마가 9시 시간대에 많이 한다. 하지만 본방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재방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보고 싶은 것은 돈 주고 본다.

  이제 밤잠을 재우기 위해 슬슬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 불을 끈다고 하니 더 놀고 싶다고 운다. 보통 졸리면 순순히 친구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오늘은 더 놀고 싶나 보다. 그래 30분만 더 놀다 자러 가자.

# 9시 반

  이제 정말 자러 가야 한다. 잠잘 시간입니다~ 온 집안 불을 끈다. 아이를 안고 아이 침대로 간다. 아이는 침대로 데려 온 친구들과 놀다가 엄마한테 안아 달라고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뒹굴거리며 재잘된다. 이 노래 저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하면 열심히 불러준다. 그러기를 1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잠든다. 나도 잠들어버린다.


# 11시

  눈이 떠진다. 아이 재우다가 나도 잠드는 일이 대부분이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낮에 못했던 책이나 좀 볼까. 아니면 TV를 좀 볼까.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이나 뒤적거려볼까. 아니다. 내일을 위해서 자야겠다. 내일은 또 무슨 반찬을 하고 뭘 하면서 놀아줄까....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회사를 다닐 때 업무량이 많은 상황을 두고 우습지는 않지만 우스갯소리로 나의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말하곤 했다. 그때는 적어도 평일같은 주말을 보내도 주말이라는 사실을 인식 했었는데 지금은  주말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두 돌이 지나면서 아이의  낮잠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줄어든 낮잠 시간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좀 더 나의 자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저녁 잠을 재울때 같이 잠들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것도 나에게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눈을 감고도 잠들지 말아야하며 감은 눈을 다시 떠야한다. 이제 갓 3년차 육아에 접어든 전업주부에게 육아와 내 자신을 위한 시간 사이의 워라밸을 기대하기란 무리인 것 같다.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빠른 육퇴(육아퇴근)를 염원해본다.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naver.me/56IziNdy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