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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Aug 29. 2019

아이의 '왜(WHY)'공격이 시작되었다

꼬마 철학자이거나 꼬마 악당이거나

  아이들이 4살쯤 되면 '왜왜왜'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했다. 나는 그런 날이 오면 짜증 내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옹알거리던 아이가 질문을 한다니 얼마나 귀여울까?


   시간이 흘러 옹알거리던 아이는 일취월장으로 말이 늘어갔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왜' 공격이 시작됐다. 드디어 우리 아이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구나! 처음에는 너무 대견스럽고 신기해서 열심히 대답해주었다. 말도 안 되는 락에서 ''를 남발했지만 당황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왜, 왜, 왜  또는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라고 물어볼 때면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을 해주기가 무척 어려웠다. 말문이 턱 막히기 일쑤였다.


  아이의 '왜' 공격은 마치 철학자들이 진리 탐구를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나가는 수련법 같았다. 때로는 엄마가 말문이 막혀 당황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닌 가라는 의심도 들었다.


  보통 이렇게 대화가 진행된다.

나비가 알을 낳고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가 되어 다시 나비가 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면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이야기를 듣다가 '왜(또는 어떻게)' 공격을 하기 시작한다.


-애벌레가 왜 번데기가 됐어?

-응~ 애벌레가 나비가 되려면 번데기가 돼서 잠을 자야 돼.

-왜~~ 에?

-번데기 속에서 변신을 준비하거든.

-왜~~ 에?

-나비가 되려고.

-왜~~ 에?

-나비가 되려고 태어났으니까.

-왜~~ 에?


허허, 이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왜 질문을  끝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다른 것으로 관심 돌리기고 또 하나는 역공격이다.


첫 번째 방법을 택한다면,

- 나비 날개 봐~너무 예쁘네~ 그렇지?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하면 된다.


두 번째 방법을 택한다면,

- 나비가 왜 되려고 할까?

이제 아이에게 내가 질문을 한다. 그럼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자기 나름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그 답은 생뚱맞기도 하고 말도 안 되기도 하고 정말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 나비가 돼서 하늘을 날고 싶어서 그런가 봐

아이는 자신 있게 말하고서는 뿌듯해한다. 그럼 나는 맞장구를 쳐준다.

- 아~그런가 보다. 우리 지효가 잘 알고 있네.


  대체적으로 두 번째 방법을 택하지만

-엄마가 말해봐~내가 물어봤으니까

라고 답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 또 머리를 쥐어짜서 대답을 해줘야 한다. 논리적인 답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정말 답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왜'라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대부분은 '왜라는 질문이 여기서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열심히 대답을 만들어 말해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왜?라는 질문을 잘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하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생각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왜?라고 물어봤을 때 왜?라는 물음이 생소하기까지 했다.


  반면 아이에게는 날마다 신기한 것 투성일 것이다. 뭐든 생애 처음인 것이 많을 테니까. 그러니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질문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도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이가 없었을 때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기존의 내가 아닌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아이가 살아가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안보였던 부분들이 하나둘씩 보이게 되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요즘은 아이의 '왜'공격을 받은 이후로는 다시 '왜'라는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한동안 나는 꼬마 철학자님의 '왜' 수련법으로 인생 훈련을 받을 것 같다. 짜증 내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 수련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해야겠다.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naver.me/56Iz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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