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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Oct 07. 2018

육아 필수 아이템

커피도 못 마시던 사람이 엄마가 되더니 매일 커피를 들이켜게 되었다

  나는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팠다. 회사에 출근해서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 먹고 한잔, 오후에는 졸려서 또 한잔, 퇴근 전에는 집에 가기 전에 또 한잔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되어서야 커피를 좀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쓴 맛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캐러멜 마끼아또부터 도전했다. 이름부터 달달하다. 캐러멜이 들어가니 안 맛있을 수가 있으랴. 거기에 생크림이 아름답게 올라간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면 회사 동료들과 캐러멜 마끼아또에 캐러멜 시나몬 브레드를 주문해서 강력한 단맛으로 고통의 뇌를 마비시켰다.

 

그런데 캐러멜 마끼아또는 커피로 치기에는 본연의 커피 맛을 많이 벗어났으니 커피를 마셨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까페라떼는 큰 맘먹고 마시기도 했는데 한 잔 시키면, 아이스 라테는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하루 종일 마셨고, 뜨거운 라테는 이틀 동안 마셨다. 내 몸속으로 커피를 한꺼번에 왈칵왈칵 침투하게 허락하는 날이면 배에서 신호가 왔었기 때문에 한 모금씩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카페인을 맞이해야 했다. 까페라떼도 이 지경인데 아메리카노는 엄두도 못 냈고, 에스프레소는 내가 닿을 수 없는 저 미지의 세계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커피와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속상할 이유는 없었다. 커피를 꼭 마셔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러던 내가 지금은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집을 박차고 나가기도 하고 부엌 찬장에 인스턴트커피가 떨어지지 않게 항상 체크를 하고있다. 내 몸이 카페인을 필요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신했을 때 육아 선배들은 1년만 힘들면 된다고 했다. 그래 그까짓 1년 참아보자 했다. 열심히 놀아주고, 이유식도 만들고, 씻기고, 재우고, 내 몸은 뒷전이고 아이만 보였다. 그렇게 애지중지 1년을 키운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더 힘들어지다니! 누가 1년만 고생하면 된다고 했는가.


  이제 좀 편해지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황한 나는 친구들한테 연락을 했다. 처음 별말 없던 친구들이 저마다 이제 서야 이실직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3년까지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에서 두 돌까지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어퍼컷을 맞은 것 같았다. 생전 눈물 한 방울 잘 흘리지 않고, 몇 달 야근도 견디어 냈던 나인데, 아이를 낳고 나서 처음 눈물을 흘렸다. 너무 힘들었다. 걷기 시작한 아이는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계속 쫓아다녀야 했고, 아니면 안아달라고 내 다리에 매달려 칭얼거리고, 밥을 먹을 때는 5분도 제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극기 훈련이었다. 하루 한 끼, 아이가 낮잠을 잘 때 겨우 먹었다(정체기로 들어선 내 몸무게가 이 시기에 빠졌다. 이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잠이 쏟아지고 몸이 힘들지만 잘 수도, 잠깐 누워 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이 계속되자 난 커피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왜 사람들이 출근해서는 커피를 한 사발 꼭 마셔야 한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 정확히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거의 매일 나는 커피로 나의 심신을 달래주었다. 그나마 16개월이 지나면서 혼자 놀기도 하고 매달리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었지만 커피는 육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커피의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커피로 입안을 적시면 기운이 나고,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실 때면 세상의 평화가 온 기분이다. 커피야, 고마워.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naver.me/56Iz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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