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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09. 2019

빛이 바꾼 건축과 도시 그리고 생활

빛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 (1)


처음 유럽여행을 가면 누구나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성당과 기차역이다. 짧게는 몇백 년 길게는 천년이 넘는 성당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간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시각적 청각적 그리고 촉각적인 경험들이 있다. 우선 실내 공간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긴 예배당과 그 시절 어떻게 지었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높은 천장, 그리고 돌로 지어져 깊고 낮게 울리는 사람들과 악기의 소리들, 그리고 약간은 차가운 공기가 이 곳이 신성한 공간임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또 한 가지 일반적인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빛이다. 지어질 당시 인공조명이라고는 초와 램프가 전부였던 시절, 이 시기의 건축물은 자연광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하며 지었다. 건물의 깊이와 창의 높이, 방향, 돔의 형태와 돔 옆에 나 있는 창문들, 그리고 천장에 그려진 수많은 장식과 그림들, 또한 아름답게 반짝이며 빛나는 빛의 그림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보면 어두운 공간 속에 창이 하나하나의 조명이 되어 공간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공조명이 없었을 당시의 건물은 자연의 빛을 실내에 들이는 것에 많은 고민을 담고 있다.



전기를 사용한 인공조명이 개발되기 전의 인류는 자연광이 무엇보다 소중한 광원이었다. 초나 기름을 사용한 램프는 사용하기에도 불편할뿐더러 무엇보다 광량이 매우 부족했다. 집과 같은 작은 공간이라면 모를까, 성당과 같은 큰 건물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당시의 건축가들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연의 빛을 실내에 끌어 들일 수 있는지 연구했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물의 방위와 창의 높이, 크기 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늘의 빛은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축복이었다.




하늘과 태양은 그 자체로 하나님 또는 신을 의미했기 때문에 어둠 속의 빛은 인류에게 축복과 같았다. 왕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이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모두 동등하게 빛을 받았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주고, 따뜻한 온기를 내어주며, 논밭의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였다. 한번 내리면 빈 곳 없이 구석구석 이 땅을 적시는 비와 함께 하늘의 빛은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축복이었다.



인류는 꾸준히 발전했고, 인류가 철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새로이 생겨난 철근+콘크리트라는 이 놀라운 조합은 도로, 교량, 항만 등의 기반시설부터 사람이 일하고 살아가는 건물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규모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며 20세기 도시와 인류의 모습을 바꾸었다.



빛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하늘에서만 내려오던 빛을 이제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서 건축에서부터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전기만 들어오면 실내는 너비와 층고, 구조는 관계없이 어느 공간이나 빛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도저히 깊은 안쪽에는 햇빛이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박스 같은 건물을 짓더라도 천장에 균일하게 조명과 전선을 배치하면 빛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렇게 인류에게 더 이상 빛은 신이라는 존재만이 내려주는 축복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생활 필수용품이 되었다.



인공조명이 바꾼 또 하나는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해가 지는 것을 하루가 끝났음과 동등하게 표현하는 ‘날이 저물다’라는 표현은 이제 현실성을 잃은 지 오래다. 이제는 해가 지는 것과 관계없이 어디든 밝은 공간이 존재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공간도 가능하다. 해가 진 뒤에도 인류는 한참을 더 깨어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아침에 해가 뜨더라도 암막커튼을 치고 눈을 뜨지 않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인공조명이 개발되면서 ‘지하공간’이라는 장소의 확장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지하보도, 지하철, 지하 주차장 같은 공간은 전기를 통한 조명이 없었다면 사실상 존재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어두웠던 지하공간은 점차 건축과 조명 그리고 환기설비의 발전으로 이제는 화려한 조명의 대규모의 쇼핑공간들이 지하에 위치하고 그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처럼 쾌적한 지하공간의 사용은 인공조명의 발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편리해진 빛은 반대로 자연광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두운 곳을 '밝게'만드는 것은 이제 인류에게 가장 쉬운 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밝히는 것에만 만족한 채, 좋은 빛에 대해서는 소홀해지는 면 역시 존재했다. 효율만은 생각한 채 최대한 넓고 크게만 지어진 뒤, 무심하게 설치된 우리의 사무실과 주거공간의 조명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자연광에 대한 무관심도 점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절약,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연광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은지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중정과 선큰의 유행은 단지 자연광을 실내로 들이는 미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조명 사용 축소와 원활한 환기로 인한 인한 에너지 감소의 측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창문이 없었던 백화점은 몰의 문화로 넘어가며 천장을 열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공간들이 점차 생겨났고, 지하철 역시 중간중간 자연광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광천장이 설치되고 있다. 빛은 들이고 여름철의 뜨거운 온도는 들이지 않기 위한 다양한 연구 역시 계속되고 있다.




조명이 발전함으로 인해 변화될 사회와 우리 삶의 모습은
어쩌면 이제 시작단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에디슨이 처음 전구를 만든 해가 1879년이다. 140년이라는 인공조명의 역사는 단순이 인류를 밤의 어두움에서 해방시켜준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공간의 형태와 삶의 모양, 인류가 사용하는 공간과 시간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는 건축과 가구의 역사에 비해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게다가 인류가 다루는 인공조명의 기술은 점차 발전하여 그 종류와 성능, 역할과 영향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조명이 발전함으로 인해 변화될 사회와 우리 삶의 모습은 어쩌면 이제 시작단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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