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 (2)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 지금의 아내와 손을 잡고 처음으로 부동산이라는 곳을 다니에 되었다. 서울과 경기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왜 다들 집 문제로 고민하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됨과 동시에 집값만큼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역세권, 숲세권 등의 지리적인 요소화 함께 빛이 잘 드는 집은 한번의 예외도 없이 늘 높은 가격을 받았다. 같은 건물에서도 어떤 방향이냐에 따라 몇천만원이 왔다 갔다 했다. 당장 돈과 관련된 문제가 되니 우리는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도대체 빛이 뭐길래.
우리나라에서 남향은 ‘좋은 집’의 다른 이름이다. 좋은 집은 ‘비싼 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남향의 집에는 대부분의 낮시간 직사광선이 창문을 타고 집안으로 쏟아진다.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은 소파에 닿을 정도로 들어온다고 하면, 고도가 낮은 겨울은 거실 한가운데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이 직사광은 여름에는 너무 뜨거워 실내 온도를 높이기도 하고, 과도하게 밝은 창가의 조도는 깊숙한 실내와 심한 대비를 만들어 오히려 실내 안쪽 공간을 어둡게 보이게도 한다. 집안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은 창가에 놓인 가구들의 변형이나 변색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직사광에 포함된 자외선은 피부에도 좋지 않아 실내에도 선크림을 바르고 있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조상들이 예로부터 남향을 선호해 왔다는 이유로 현대에는 아무런 필터 없이 받아들인 것일까. 해만 비치면 공원으로 뛰어나가 썬텐을 하는 유럽인들이라면 모를까, 밖에만 나가면 선크림에 모자에 요즈음에는 횡단보도 앞에 있는 파라솔 안에 옹기종기 모여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는 한국사람들이 유독 집만은 남향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빛은 단순히 밝고 어둡다의 문제를 넘어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다. 낮시간 풍부한 빛은 사람을 보다 활력 있고 건강하게 만든다. 집안에 잘 들어오는 햇빛은 집의 온도를 높여주고 습도를 조절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모든 생물에게 그렇듯 태양빛은 생명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남쪽을 향해있는 집을 얻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직사광은 잘못 이용하면 오히려 여러 불편함을 줄 정도의 강한 빛이다. 그 빛을 ‘어떻게’ 실내로 들일 것인지가 집의 방향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이다.
직사광은 잘못 사용하면 여러 불편함을 줄 정도의 강한 빛이다.
그 빛을 ‘어떻게’ 실내로 들일 것인지가 집의 방향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단층이 대부분이었던 우리의 조상들은 긴 처마를 통해 빛을 조절했다. 인공조명이 없었을뿐더러 목재를 주 재료로 지은 한옥은 직사광선이나 비에 쉽게 갈라지거나 썩을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했다. 남쪽을 향해 마루를 냈지만 긴 처마를 두어 그림자가 직접 실내까지 직사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여름의 뜨거운 해는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낮은 고도를 갖는 저녁 또는 겨울의 햇빛은 직접 공간 안까지 들어오는 구조였다. 그러면서도 마당은 밝고 환하게 놔두었다. 마당 바닥면에 반사된 빛이 집안 깊숙이까지 들어오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뒷마당에는 식물이 심겨있을지언정, 해를 바라보는 앞마당은 밝게 트여 놓았다. 만약 한옥의 마당을 유럽처럼 다양한 식물이 심긴 정원으로 꾸몄다면 실내는 지금보다 많이 어두워졌을 것이다.
직사광을 컷오프(cut-off : 조명에서는 눈부심 등을 방지하기 위해 빛이 어느 각도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을 의미)하여 직접 들어오는 강한 빛을 차단하고, 반사면을 최대한 사용하여 안쪽 깊은 곳의 조도를 보완하는 것. 이것은 현대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직사광 조명 설계의 기본이 이 된다. 현대의 대부분은 단층이 아닌 고층 건물이며, 그 건물에는 처마를 달 수가 없다. 대신 수평 루버(louver)를 설치하여 강한 직사광을 차단한다. 그러면서 루버의 윗면을 맞은 빛이 반사하여 실내 공간의 천장을 밝게 비춘다. 이로써 직사광을 차단할 뿐 아니라 창가 쪽 자리와 안쪽 자리의 조도 차이도 낮춰 공간의 빛을 보다 균등하게 유지한다.
루버 하나하나가 작은 처마가 되어 실내에 들어오는 강한 직사광을 차단하고, 루버 상부에 반사된 빛이 실내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도록 한다. 이때 루버의 길이, 높이, 간격, 각도 등은 건물의 위치와 방위를 기준으로 사계절 24시간 태양의 고도와 광량을 고려해 결정된다. 이는 디자인이 자연의 값을 탐구하여 결정되는 드라마틱하고 멋진 과정이다.
건축물의 루버가 작은 창에 사용될 수 있는 버전으로 축소된 것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블라인드다. 주로 실내에 설치되는 블라인드는 온도까지는 차단할 수 없으나 직사광이 그대로 실내공간에 떨어지게 하지 않고 천장으로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역할로 사용하기보다 외부 빛 또는 노출을 차단하는 용도로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조명 디자이너로써는 조금 아쉽다. 집에 블라인드가 있다면 가리거나 걷어내는 것 말고 빛이 잘 들어오는 날 수평으로 맞춰 보자. 바깥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실내에 보다 풍성한 빛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버티칼 역시 빛을 컨트롤하는 도구다. 대신 블라인드가 수평의 형태로 위에서 오늘 빛을 반사시켰다면, 버티칼은 수직으로 좌우에서 오는 빛을 컨트롤한다. 커튼이 완전히 시야를 가리면서 빛을 조절한다면, 버티컬은 실내에서의 시야를 어느 정도 확보하며 빛을 조절할 수 있다. 만약 동쪽 혹은 서쪽을 향해 있는 창이라면 버티칼을 사용해 최대한 남쪽에 있는 밝은 빛을 반사시켜 실내로 들여오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직사광이 많이 드는 창이라면 버티칼은 효용성이 높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직사광은 고도에 의해 내려오는 빛이기 때문에 수직 형태의 버티칼로는 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버티칼은 직사광보다 천공광을 좀 더 활용하는 용도로 적합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컨트롤하는 또 다른 도구는 커튼이다. 사실 가장 친근하고 널리 사용되는 도구이기도 하다. 커튼 역시 가리기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커튼에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투광성’이다. 빛을 얼마나 차단하고 또 통과시켜 주는가. 투과율이 좋은 밝은 하얀색 커튼을 치면 쨍한 직사광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바뀌어 실내로 들어온다. 빛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면 베이지나 핑크 커튼을, 활기차게 만들고 싶다면 옅은 하늘색 커튼을 사용하면 된다. 패턴은 어떤게 좋을지 레이스는 달려야 하는지 등의 디자인 이슈는 그다음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침실과 같이 빛을 차단하고 싶은 공간에는 투과율이 적은 커튼을 사용한다. 더블 레일로 투과율이 다른 두 가지 커튼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다. 커튼만 잘 사용해도 창은 놀라운 조명으로 변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 방향의 빛이 어떤 매질을 통과하거나 반사해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것을 난반사라고 한다. 같은 양의 빛이라도 더 넓은 면적을 통해 넓은 방향으로 퍼질 경우 눈부심이 줄어든다. 이를 활용한 것 중 다른 하나가 간유리 또는 무늬유리이다. 간유리의 역할은 빛은 그대로 들이며 시야를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빛을 난반사로 퍼트리는 역할도 한다. 이 현상은 빛이 들어오는 창문뿐 아니라 조명기구를 만들 때도 사용한다. 간유리를 사용한 창은 커튼처럼 빛 자체의 양을 줄이지 않으면서 최대한 빛은 그대로 사용하고자 할 때 쓸 수 있다.
남쪽 창문이 아니거나, 시야가 막혀있어 상대적으로 빛이 적게 들어오는 창이라면, 커튼을 치기엔 빛이 줄어들고, 그대로 두자니 외부로의 노출이 신경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버티컬이나 간유리 등을 사용하면 빛의 양은 줄이지 않으면서도 시야를 틔우거나 가릴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의도적으로 창 가까이에 조명을 두는 것도 어두운 창문을 보완하는 좋은 방법이다.
창은 조명의 다른 이름이다. 전구라는 광원을 등기구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감싸고 열어주느냐에 따라 빛이 다양한 모습으로 퍼지듯, 태양빛이 들어오는 창을 어떤 재료로 어떻게 감싸고 열어주느냐에 따라 집안 빛의 분위기가 바뀐다. 우리 집 거실과 방의 창들은 어떤 조명이 되는 것이 좋을까?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멋진 조명기 구보다 더 멋진 빛을 내는 조명이 '창'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