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 (3)
한국은 누가 뭐라 해도 아파트다. 과거 한옥이 우리 조상의 주거문화와 철학을 대변했듯, 지금의 한국은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문화를 대변한다.
조명설계회사를 다니던 시절, 교량과 공원, 지하철 조명만을 하던 우리 팀에 아파트 조명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늘 주거 조명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터라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도 실력 있는 조명설계사무소였기에, 이전의 뻔하고 안일한 조명을 배제하고 해외의 좋은 조명 사례들을 분석하고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는 빛들을 계획했다. 거실 소파가 놓일 자리에는 낮은 시선에 맞도록 나란히 3개의 펜던트가 달린 조명을, 천장에는 전장과 동일한 느낌의 매입등을 사용하고 TV가 놓일 자리 뒷면에는 간접조명을, 침대가 놓일 자리엔 벽등을, 공부방 책상 위에는 기다란 집중 조명 펜던트를 계획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은 무산되었다. 좀 더 좋은 빛환경을 위해 계획했던 조명들이 취소되고, 비워진 자리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방 한가운데 천장에 방등으로 결정되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실제로 살 사람이 이곳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싼 비용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비용 이슈를 배제한다 해도 공간에 최적화된 조명안이 선택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소파를 반대쪽에 놓고 싶어 할지 모르고, TV가 없는 집도 있을 것이며, 거실을 서재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방 역시 마찬가지다. 침대방이 될지, 공부방이 될지, 창고가 될지, 또 침대의 머리 방향은 어느 쪽으로 할지, 화장대의 위치와 책상의 위치, 아니 애당초 그런 것들이 있을지 없을지조차 이무 것도 알 수도, 정할 수도 없었다.
가구의 위치를 모른다는 건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이 어떤 동선과 시야를 갖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조명 설계를 고려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정할 수 없는 이 상횡에 우리의 아파트는 그냥 방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조명을 설치하는 것을 택했다. 법으로 규정한 실내 조도기준을 맞출 수 있는 정도의 아주 기본 적인 조명을 말이다. 아파트뿐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배치가 달라질 수 있는 모든 주거공간에는 그런 이유로 방등이 설치된다.
아, 가구 배치가 완료되어 사용자 시선에 맞도록 조명을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이 딱 한 군데 있었다. 바로 화장실이다. 화장실의 조명이 그나마 다른 공간의 조명보다 좋은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는 사람 마음대로 세면대나 변기 욕조의 위치를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각 용도에 맞는 조명을 원하는 위치에 설치할 수 있는 곳이다. 세면대와 거울이 어디에 배치될지, 욕조와 샤워부스는 어디에 둘지 등이 정해 지기 때문에 무조건 천장 중앙에 등을 설치하는 관습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세면대 위, 거울과의 간섭을 피해 조명을 배치하고, 욕조 위 샤워기 헤드로 인한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조명의 위치를 옮기는 것도 가능했다. 침실에서는 그렇게 어렵던 벽등도 욕실에 한해서는 달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호텔이나 멋진 펜션의 조명이 어딘가 집보다 좋고 분위기 있는 이유의 근본은 모두 가구의 종류와 위치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사용자의 시환경에 따라 조명설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어디서 어떻게 가구를 두고 활동을 할지가 정해지면 우리는 훨씬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와 같이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구분된 환경이 낳은 극도의 하향 평준화된 조명이 바로 우리나라의 ‘방등’이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바닥면 조도를 중시하는 국내 조도기준에 맞춰 선정된 조명이다. 직접 배치까지 고려해 설계되는 개인주택, 호텔, 별장 등에는 방등이 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아파트처럼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구분된 환경이 낳은
극도의 하향 평준화된 조명이 바로 우리나라의 ‘방등’이다.
그런데 왜 해외에서는 방등을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해외라고 모든 집의 배치가 정해진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유럽과 같은 서양권의 경우도 짓는 이와 사는 이가 분리되어 있지만 방등으로 조명을 해결하는 일관적인 방법보다는 펜던트, 스포트 조명, 샹들리에, 벽등, 플로어 스탠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주거공간의 빛을 해결한다. 심지어 천장 등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방등이 유일한 해결방안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주거환경에 방등은 좋은 조명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방등은 좋은 조명이 될 수 없을까? 방등 타입의 조명이 주거공간, 특히 침실에 좋지 않은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방등은 가장 높은 효율과 가성비로 균일한 조도를 내기 위해 존재하며 이는 좋은 빛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만 만든 빛환경이다. [흐린 날 기분이 우울한 이유] 편에서 설명했듯 균일한 빈환경은 흐린 하늘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거의 없고 우울한 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균일한 빛과 대비를 가진 빛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좋은 빛 환경이라고 느낀다.
모델하우스를 가면 우리는 화려한 주거의 모습을 보게 된다. 건설사는 고급 가전과 멋진 소품으로 공간을 꾸며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뿐 아니라 아파트의 부족한 빛환경을 숨기기 위해서도 다양한 장치들을 해 놓는다. 침대 밑, 머리맡, 책장 밑 등의 간접조명과 각종 플로어 스탠드와 테이블 스탠드 조명을 설치하는 것에 모자라 천장에 전시장에서 쓸 법한 수십 개의 스포트 조명을 모든 공간에 추가로 설치한다. 기존의 조명만으로는 강약 있는 풍성한 빛환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밝은 건 좋지만 눈부신 건 싫어] 편에서 설명한 것처럼 눈부심은 사람의 중심 시야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사람이 주로 활동하는 시야에는 최대한 밝은 빛이 직접 보이는 것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침실’의 ‘방등’은 최악의 조명이다. 사람이 누워있는 행태가 가장 많은 침실 천장 한가운데 바닥을 비추는 조명이 있다는 건 결코 좋은 빛환경이 아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침실의 빛환경은 두 가지 일 수밖에 없다. 등을 켜 두어 눈이 부시거나, 아니면 꺼야 해서 캄캄하거나. 눈부심 공격으로 늦잠 자는 누군가를 깨울 의도가 아니라면 침실에 방등, 그것도 방등 하나만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좋은 조명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는 갓난아이의 경우를 생각하면 조명에 대해 좀 더 신경 써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엄마는 앉아서 아이를 보지만, 아이는 바닥에 누워 하루 종일 천장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된다. 실제로 갓난아이의 눈은 어른보다 더 깨끗한 수정체를 가지고 있어 어른의 시각보다 같은 빛을 더 밝게 인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에게 좋은 빛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누워있는 행태의 공간에는 플로어 스탠드나 테이블 스탠드를 두는 것이 좋다. 천장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종류의 플로어 스탠드라면 어느 정도 방등을 대체할 수 있는 정도의 밝기도 만들 수 있다. 침대 옆 협탁에 테이블 스탠드를 놓는다면 잠들기 전 따뜻한 이불 밖을 벗어나 불을 끄고 어두워진 방에서 더듬더듬 침대를 찾아 다시 누워야 하는 불편함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훨씬 편안한 시환경을 만들어 준다. 천장등을 사용해야 한다면 하부만을 비추는 조명보다는 벽면을 비추는 투광형 조명이나, 천장과 벽을 골고루 밝혀줄 수 있는 구형 펜던트가 침실에는 보다 어울린다.
주거의 빛은 바뀔 필요가 있다.
방등이 효율적인 조명인 것은 맞다. 하지만 더 이상 주거에서의 조명이 단순히 '밝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던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가구는 이제 결혼할 때 사서 20여 년을 사용하는 혼수품을 벗어나 개인의 용도와 취향을 넘어 트렌드와 사치의 영역을 넘나드는 요소가 되었다. 빛도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 시기가 되었다. 실제로 형태로 보이는 주거환경의 대부분의 요소는 발전하였으나,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빛환경'에 대한 관심은 아직 부족해 여전히 조명만큼은 한참 뒤떨어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빛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 비싼 조명기구가 아닌 보다 좋은 빛환경이 우리 삶에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