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 (1)
우리 집에는 어떤 방향에 어떤 창문들이 있는가?
그 창이 놓인 공간은 집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가?
집은 남향이어야 밝다는 이야기 말고는 집과 방위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모두가 남향에서 사는 것도 아니며, 그 외에도 우리의 주거 공간에는 다양한 방위의 창들이 있다. 과연 창문의 방향에 따라 어떤 빛이 들어오고 또 우리는 그 빛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모두가 집을 동일한 용도와 시간과 패턴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각자의 삶에 어울리는 공간의 빛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주로 거실을 기준으로 한 평면을 사용하기에 남향의 기준은 거실의 창이 남쪽을 향해있느냐로 결정된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데, 남쪽으로 기울어져 넘어가기 때문에 남쪽에 창이 날 경우 거의 하루 종일 직사광이 들어온다는 특징을 갖게 된다. 남쪽의 창은 그렇게 가장 많은 직사광이 들어오는 창이다. 가장 많은 빛이 들어오는 창이기에 남쪽 창이 있는 공간은 가장 밝고 화사하며 활동적인 공간이 된다. 하지만 강한 빛이 들어오는 창이기에 공간은 강한 대비를 갖게 되며 눈부심이 있고, 여름에는 실내 기온이 과도하게 올라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쪽 창을 둔 공간은 그래서 밝기, 온도, 습도 등 하루의 환경변화가 큰 공간이다.
우리 조상들은 남향을 선호하되, 이러한 직사광의 빛을 보다 실내에 잘 들이기 위해 처마를 사용해 직접 직사광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했다. 대신 마당에 식물을 심지 않고 밝은 바닥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반사된 빛이 집안 깊숙이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사실 고층건물이 대부분인 오늘날의 주거에서는 처마를 둘 수가 없는 건축적 환경에 놓여 있다. 그래서 과거와 같이 빛이 들어오는 남향을 여전히 선호하지만, 집안까지 들어오는 직사광을 컨트롤하는 것에는 오히려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와 같이 상대적으로 빛을 받아들이기에, 거실 그것도 창문 앞이 너무 밝으면 그 밝음에 익숙해진 시신경으로 인해 집의 안쪽 공간이 오히려 더 어둡게 느껴진다. 직사광을 컨트롤하기 위해 커튼, 버티칼, 블라인드 등이 사용되며, 조명을 지혜롭게 배치에 심한 조도 차이를 줄일 수도 있다. 각각의 용도와 그로 인해 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다음 장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어찌 되었건 남쪽 창은 빛이 풍부한 좋은 조명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필자의 집처럼 침실에 남쪽 창이 있다면, 침대를 방의 서쪽으로 붙여 놓음으로써 최대한 오전 시간 내 침대로 많은 빛을 들일 수 있다. 커튼을 걷어놓고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낮시간 일광소독을 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북쪽의 창은 직사광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런 빛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공간이라는 얘긴 아니다. 이전 글 [태양빛의 두 가지 얼굴] 편에서 설명했듯 태양빛은 직사광과 천공광이라는 두 가지 빛으로 우리 자연의 빛환경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북쪽의 창은 천공광만이 들어오는 창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드럽고 은은한 빛이 하루 종일 유지된다. 이는 기온과 환경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환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상온 보관 식료품, 보관해야 할 짐 들을 넣는 창고가 북쪽에 있는 것은 그곳이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서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 무언가를 보관할 때는 하루의 온도 변화가 크지 않은 곳이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꼭 보관장소가 아니더라도, 하루 종일 빛과 온도 변화가 크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면 이를 북쪽 창문이 있는 곳에 두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이러한 북쪽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특성 때문에, 인공광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미술작업을 하던 예술가들은 북쪽방을 선호했다고 한다. 빛변화가 큰 다른쪽 창문에 비해 북쪽창이 난 공간은 하루동안 들어오는 빛의 편차가 가장 적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 생활로 비교해 보자면, 모니터를 봐야 하는 공간우로 볼 수도 있겠다. 누구에게는 작업실일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사무실일수도 있겠다. 낮동안 햇빛이 들어와 컴퓨터 모니터가 잘 보이지 않거나 반사되는 빛 때문에 방해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북쪽 창이 왜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쪽의 창은 해가 지는 시점에 가장 많은 빛이 들어온다. 오전과 낮시간에는 북쪽 창과 같이 천공광이 주로 들어오다가, 오후로 넘어가면서 차차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쪽 창의 큰 차이점은 색온도가 낮은 노란빛 혹은 붉은빛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서쪽 창은 그런 의미로 로맨틱하다. 감성적인 빛이 풍부하게 들어오는 빛이라고 보아야 한다. 늦은 오후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 있다면 서쪽 창이 난 곳에 두는 것을 추천한다. 안 읽히던 소설이 읽히고, 안 마시고 싶던 와인이 생각나는 곳이 바로 서쪽 창문을 둔 공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 동쪽 창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쪽 창을 남쪽 창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쪽으로 난 창문은 아침시간 직사광을 실내로 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제 막 떠오른 태양의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이 동쪽 창문이다. 주로 대부분의 낮시간을 바깥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는 가장 많은 식구가 집에 있는 아침시간에 빛이 어떻게 들어오느냐가 주거 빛환경의 많은 것들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쪽 창에 식탁을 두면 햇살을 머금은 아침식사를 할 수 있고, 동쪽 창에 부엌을 두면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햇살에 부서지며 빛나는 물방울들을 볼 수 있다. 동쪽 창에 침대를 두면 자연이 만든 반짝이는 알람에 눈을 뜰 수 있다. 동쪽에서 오는 빛의 색온도는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동쪽 창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가족의 아침시간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주거의 특성상 동쪽 창에 다이닝룸이 배치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남향을 중시해 거실을 남쪽으로 배치하고, 반대쪽인 북쪽으로는 주방을 배치해 자연광과는 거리가 먼 주거 평면의 정 중앙에 식탁이 오게 되는 경우가 가장 흔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빛을 펜던트 조명으로 만회하려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의 빛을 따라올 수는 없다. 햇빛이 떨어지는 식탁 위의 음식은 없던 식욕도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아침저녁으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얼굴을 마주 보는 이 공간은 좀 더 좋은 빛환경을 가진 곳에 놓는 시도가 계속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삶에서 빛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빛환경을 만드는 모든 행동이 조명설계이다.
나는 조명 설계가 꼭 등기구 배치 도면을 그리고 조도 계산을 하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동서남북의 창문은 그 자체로 놀라운,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조명기구가 된다. 각각의 창은 각자가 가진 빛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삶의 공간과 빛이 만날 때 그 빛은 우리에게 에너지와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말랑말랑한 감성을 이끌어내 주기도 하며, 편안한 시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잘못 사용한 빛은 우리 눈을 부시게 하고, 비효율적인 에너지로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요소가 되며 심지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을 공간과 생활에 녹여내는 것. 삶에서 빛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빛환경을 만드는 모든 행동이 조명설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