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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Oct 31. 2019

흐린 날 기분이 우울한 이유

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2)


지난 5월,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고 아내와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포르투로 떠났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큰 마음먹고 떠난 여행이기에 기대가 컸다. 쨍쨍한 유럽의 햇살을 기대하고 도착한 포르투는 잔뜩 찌푸린 하늘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애써 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포르투가 그렇게 좋다던데 우리가 만난 포르투는 칙칙하고 건물도 낡고 어딘가 스산한 그런 도시였다. 포르투의 둘째 날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가 끼더니, 이후로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계속됐다. 기대는 실망이 되고 쉽게 나가 놀 수 없으니 기분은 더 처졌다. 



며칠 후, 흐렸던 구름은 사라지고 선명한 유럽의 태양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신이 난 마음에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만난 맑은 날의 포르투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칙칙했던 붉은 지붕은 태양빛을 받아 아름다운 빨간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건물의 외벽은 전면의 멋진 장식들이 다채로운 음영을 이루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래된 가로수의 잎사귀는 화사한 연녹색 빛을 뿌리며  빛나고 있었고, 산들산들 그림자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낮의 도우루 강은 햇살을 맞아 늘 반짝이며 빛났고, 해 질 녘 모루 언덕에서 바라보는 서쪽 하늘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색상의 석양이 졌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실망감과 우울감은 간데없고 한 달 뒤 포르투는 우리 부부의 인생 여행지가 되었다.



우리 부부를 실망시켰던 흐린 날의 포르투 도우루 강가


맑은 날의 포르투 도우루 강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기상병이라는 말이 있다. 장마기간 또는 겨울철 일조시간이 너무 짧아 사람이 충분히 햇빛을 받지 못할 때 생기는 우울증을 의미한다. 굳이 이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지난 경험을 통해 저 증상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며칠 동안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장마나 구름이 가득 덮인 흐린 날, 또는 미세먼지로 뒤덮여 있는 날씨가 수일 지속되면 사람은 몸도 마음도 활력을 잃고 이내 우울함이 찾아온다. 



일반적으로 우울함이 생기는 이유로 흔히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실외 활동이 줄어 생기는 신체적 활력의 감소, 다른 하나는 노출되는 빛의 양이 줄어들어 생기는 호르몬의 저하다. 하지만 단순히 빛의 양이 줄었기 때문에 우울함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다. 바로 흐린 날이 가지고 있는 빛의 형태이다. 




단순히 빛의 양이 줄었기 때문에 우울함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흔히 흐린 날은 많이 어둡다고 생각하지만, 흐린 날의 야외 조도는 의외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단위 면적 당 주어지는 빛의 양을 룩스(LUX)로 나타내는데, 맑은 날의 조도는 5만~10만룩스에 이른다. 흐린 날의 조도는 적게는 1만~2만룩스 정도가 된다. 맑은 날에 비해서는 적은 조도인 것 같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실내 조도는 보통 밝아야 300~1,000룩스 정도에서 형성되어 있다는 생각하면  아무리 흐린 날이라도 빛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의 빛환경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빛의 양보다 형태다. 앞서 이야기한 [태양빛의 두 가지 얼굴] 편에서 이야기한 것 같이 지구에서 태양빛은 직사광과 천공광 두 가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 중 맑은 날의 빛은 은 천공광과 직사광이 모두 풍부하게 지면을 비추는 환경이다. 전체적으로 밝기도 하지만 직사광을 통해 그림자가 생기고 밝고 어둠의 대비가 생긴다. 그림자가 진 곳의 조도와 직사광이 그대로 내리쬐는 곳의 조도 차이도 크게 발행한다. 나뭇잎사귀들에 떨어지는 햇살과 그림자가 만드는 대비가 반짝이며 빛난다. 그 대비와 파동이 마치 강약이 명확한 신나고 밝은 음악같이 우리를 감싼다.  



하지만 흐린 날은 직사광이 사라진다. 한 방향으로 떨어지는 빛은 구름과 안개 등으로 인해 가려지고, 오로지 천공을 뒤덮는 균일한 빛만이 존재한다. 나무 위에도, 아래도, 넓은 운동장도,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서도 빛의 대비는 크지 않다. 다양한 양감의 유럽 건물들도 흐린 날에는 희뿌옇고 스산한 장식 들일뿐이다. 이렇게 균일한 빛이 대지를 뒤덮는 것이 흐린 날의 빛환경이다.  



흐린 날은 대지를 뒤덮고 있는 천공광만이 빛을 내는 환경이다. 사방에서 오는 균일한 빛으로 대비도 줄고 그림자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명확한 강약 없이 흘러가는 우울한 음악과 같은 이러한 빛환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차분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지속될 경우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차분한 음악이 볼륨을 높인다고 신나는 음악이 되지 않는 것처럼, 빛의 양만 늘어난다고 해서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감정을 만지는 빛은 색과 밝기뿐 아니라 그 나름의 형태가 있다. 거기에는 적정한 광량과, 그리고 대비가 필요하다.




차분한 음악이 볼륨을 높인다고 신나는 음악이 되지 않는 것처럼,
빛의 양만 늘어난다고 해서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흐린 날의 빛과 아주 유사한 조명환경이 있다. 바로 일반적인 사무공간의 조명이다. (우울한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다) 사무실은 기본적으로 모든 공간에 균등한 조도를 주는 방식으로 조명을 배치한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무실뿐 아니라 용도와 배치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대부분의 실내공간은 등간격의 균등한 조명을 배치함으로써 실내 공간의 조도를 가능한 균등하게 맞춘다. 그러한 조명은 어떠한 배치로 이 공간을 사용하더라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조명이기 때문이다.  



균일한 조도를 위해 배치된 적당한 배광의 등간격 조명은 흐린 하늘과 유사한 빛환경을 만든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자. 아마 대부분의 공간은 이와 같이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동일한 광량의 조명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좋은 빛이기 때문에 결정된 조명 배치가 아니다. 단지 가장 효율적이며,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든지 커버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조명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흐린 날 같은 조명 속에 살아간다. 



주거공간에도 이와 유사한 조명방식이 있다. 바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등과 거실 등이다. 방등은 모든 공간에 비슷한 조도를 내기 위해 방의 가장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최대한 균등한 빛을 보내는 조명이다. 왜 우리가 방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더 나은 빛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빛과 삶을 연결하는 이야기] 챕터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흐린 날 같은 조명 속에 살아간다.




균일한 조도는 마치 하늘의 천공광처럼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조명방식이다. 천공 광은 직사광의 심한 대비를 감소시키기도 하며, 그림자를 옅어지게 만든다. 미처 빛이 닿지 못하는 곳곳에 빛을 뿌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천공광만이 존재하는 흐린 날의 빛은 마치 느리고 우울한 음악처럼 우리의 감정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단순하고 균일한 박자의 드럼 소리라도, 그 위에 다양한 선율과 대비를 가진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 전혀 다른 새롭고 멋진 음악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최근 모 TV 프로그램처럼, 우리 생활 속의 빛환경도 마찬가지로 균일한 빛과 대비를 만드는 빛이  조화를 이룰 때 보다 풍성하고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다. 천공광과 직사광이 만드는 아름다운 자연의 빛처럼 우리의 공간도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보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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