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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Oct 02. 2019

태양빛의 두 가지 얼굴

빛을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 (2)


우리는 '태양빛'이라고 하면 흔히 하늘에서 내리쬐는 강한 햇살을 생각한다. 그늘로 들어가 숨으면 피할 수 있는 그 태양빛. 하지만 그늘이라고 해서 빛이 없지 않다. 양지에 비해 약간 어두울 뿐, 그늘 역시 빛이 존재한다. 태양이 구름으로 가리어져 흐린 날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우리의 낮은 밝게 유지된다. 그러면 이 빛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낮시간 자연의 빛을 의미하는 주광(Daylight)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태양으로부터 바로 지면 위로 떨어지는 직사광(Direct Light), 그리고 대기 중 산란한 빛이 대지를 뒤덮는 천공광(Sky Light)이다. 이 두 가지 빛이 합해져 낮시간 자연의 빛환경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직사광만을 주광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지구 반구를 파랗게 덮고 있는 대기 역시 우리 자연의 빛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명이다. 직사광이 태양이라는 한 점에서 직선으로 지구에 쏟아지는 강한 빛이라면, 천공광은 그보다 훨씬 넓은 대기 속에 산란하며 이 땅을 뒤덮고 있는 은은한 빛이다.   



만약 천공광 없이 직사광만이 있다면 우리의 빛 환경은 어떠했을까? 천공광은 대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대기가 없는 환경을 생각해보면 답이 있다. 하늘에 태양이 떠 있지만, 산란할 대기가 없는 하늘은 태양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두울 것이다. 오로지 직선으로 질주하는 직사광만 바닥에 떨어지고 반사된 빛은 모두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기에 빛의 대비는 매우 강할 것이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부분은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검은색일 것이다. 떠오르는 공간이 있는가? 맞다. 달의 환경을 생각하면 된다.  



달은 대기가 없어 태양빛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하늘이 컴컴하다. 천공광이 없는 빛환경은 까만 하늘과 그림자를 만든다.(사진출처-NASA)

 


달에는 대기가 없어 태양빛이 표면에 반사된 것이 대기 중 머무르지 못하고 튕겨나가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이 떠 있는 낮에도 하늘은 온통 검다. 직사광이 표면에 닿는 각도에 따라 강한 음영 차이가 나며, 태양이 가려진 그림자 부분은 완전히 검은색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달에서 찍은 태양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검은 하늘로 인해 지구보다도 큰 콘트라스트 때문에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을뿐더러 검은 바탕에 빛 번짐이 있는 하얀 점 정도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 모두 천공광 없이 직사광만이 존재하는 자연의 빛환경이다.



다시 지구로 돌아와 천공광은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연의 풍성한 빛 환경을 만들어 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직사광이 강렬하고 극적인 자연의 빛이라면, 천공광은 부드럽고 포근한 자연의 빛이다. 한낮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남쪽 창의 상쾌함도 좋은 빛이지만, 하루 종일 은은한 빛을 방 안쪽까지 들여주는 북쪽 창 천공광의 포근한 빛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좋은 빛이다. 이 두 가지 빛이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어우러지며 이 땅의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낸다.




직사광과 천공광이 함께 어우러진 우리 지구의 빛환경은 달과 동일한 태양이 뜨는 곳이라고 느껴지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천공광이 이 땅을 균일하게 덮는 전반조명을 맡는다면, 직사광은 강한 빛으로 이 땅에 빛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대비가 강한 빛환경이 되며, 그러한 빛환경은 사람을 밝고 활기차게 만든다. 하지만 너무 강한 콘트라스트는 시환경의 자극과 피로를 줄 수 있다. 반대로 구름으로 인해 태양의 직사광의 양이 줄어들면 천공광이 주된 자연광이 되며, 모든 곳의 조도가 균일해진다. 콘트라스트가 줄고 이는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너무 낮은 대비나 조도는 사람의 기분을 다운시키며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직사광이 강렬하고 극적인 자연의 빛이라면,
천공광은 부드럽고 포근한 자연의 빛이다.



인공의 빛환경을 고려할 때도 이와 같다. 강한 직사광의 유입으로 너무 대비가 높은 실내 환경도 피해야 하는 환경이지만, 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그보다는 극단적으로 균일한 조도를 가진 공간에서 지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전의 건축은 자연광을 어떻게 하면 실내로 잘 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했다. 유럽의 성당이나, 오래된 멋진 건축물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빛이 주는 감동은 여기서 온다. 하지만 전기를 활용한 조명이 대중화되면서 건축은 예전처럼 자연광을 신경 쓰지 않는다. 박스형 건물을 만들어 놓아도 천장에 균일한 간격으로 조명등을 달아놓으면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균일한’ 조명은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균일한 조도의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의 심리는 흐린 하늘에서 있는 감정과 유사하다 라고 했던 조명 디자이너 릭 셰이버의 말에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빛환경은 우리의 자연이 그러하듯 차분한 전반의 빛과 강한 포인트의 빛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반구형 펜던트 안쪽은 마치 태양의 직사광과 하늘의 천공광을 보는 것 같다.



반구형 펜던트의 안쪽을 보면 마치 직사광과 천공광처럼 생겼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가운데 조명은 쨍하게 모여있어 펜던트 아래 있는 물체에 그림자를 만들고, 펜던트의 갓은 넓은 면적에서 빛을 내주어 은은한 빛을 뿌려준다. 어찌 보면 이 두 가지 빛의 조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공간의 빛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조명설계라는 영역은 이 빛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조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디자인 업계뿐 아니라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빛 환경의 본질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유행하는 유럽의 비싼 브랜드 조명기구의 소개나 LED 광원의 효율과 우수성 같은 ‘조명기기’의 영역에서 머무르다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조금은 더 빛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볼 수는 없을까? 이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내 삶의 중요한 요소인 ‘좋은 빛’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많아지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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