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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Oct 22. 2019

밝은 건 좋지만 눈부신 건 싫어

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1)




야밤에 운전을 하다가 또는 길을 걷다가 가로등 불빛이 너무 눈부시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길을 밝히기 위해 켜 둔 가로등이 오히려 시선에 방해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빛의 밝기를 낮추기에는 길이 어두워질 것이고, 밝기를 높이면 우리는 더 큰 눈부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가로등뿐 아니라 집에서의 조명도 마찬가지다. 집이 어두워서 야심 차게 사 온 조명이 오히려 눈부셔서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아 어쩌란 말인가. 



눈부심은 '과도하게 밝음'의 결과가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딜레마가 있듯이 조명에도 매우 중요한 딜레마가 있다.  밝아야 하지만 대신 눈부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비추고 밝힌다는 것이 조명의 역할인데 말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눈부시지 않을 정도만 되도록 ‘적당히’ 밝히면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대답은 틀렸다. 눈부심은 ‘과도하게 밝음’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부심을 만드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비'(밝기 차이) 또 하나는 '시야'다. 






대비


사람의 눈은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와 같은 기능이 있다. 눈의 홍채는 동공의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망막에 맺히는 빛의 양을 조절한다. 밝은 데에서는 조리개를 줄여 빛을 조금 들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조리개를 개방하여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빛을 받아들이며, 아주 어두운 빛부터 아주 밝은 영역의 빛까지 모두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밝기의 절댓값보다 주변 환경과의 밝기 차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실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쓰던 스마트폰 화면이 어두운 침실로 들어와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밝기를 조절해야 하는 이유다. 주변의 밝기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의 밝기 차이가 얼마나 나느냐에 따라 눈부심이 결정된다. 



어둠 속 바라보는 스마트폰이 눈부신 이유는 '밝기' 때문이 아니라 '대비'때문이다.



 나는 램프가 노출되는 조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구나 형광등이 등기구 밖으로 나와 노출되는 타입이 그렇다. 최근에는 오히려 필라멘트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에디슨 전구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고의적으로 전구를 노출하는 조명을 만들기도 한다. 이 조명은 그 조명기구 자체의 미적인 부분에 의미가 있을지언정, 무언가를 밝히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과도한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광량도 높지 않다) 꼭 필라멘트 전구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서 램프가 노출되는 모든 조명은 자칫 오히려 공간을 어둡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노출된 램프가 주요 시야에 들어오면, 눈은 그 밝음에 적응하기 위해 동공을 축소시킨다. 그러면서 주변의 공간까지 함께 어두워 보이는 효과를 만든다. 아무리 테이블 위가 밝아도, 램프 자체보다 밝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명이 밝아 눈부심이 강해질수록 공간은 더 어두워 보인다. 눈부심이 오히려 어두움을 만드는 것이다. 너무 밝은 대낮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거실 때문에 더 안쪽에 있는 주방과 부엌이 오히려 어둡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집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 때문에 절대적인 조도가 올라가도 시각은 오히려 어둡게 인지하는 것이다. 공간에서 과도한 밝기의 대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공간을 좀 더 밝게 받아들일 수 있다.



펜던트에 노출된 전구는 눈부심으로 좋은 빛환경을 만들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 최대한 눈부심이 적은 불투명 램프를 사용하거나 시선보다 높이 설치하는 것이 좋다.





시야


대비와 함께 또 한 가지 눈부심의 요건이 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시야다. 그 밝은 빛을 어디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눈부심을 느낀다. 우리가 눈을 움직여 바라보는 시야의 한가운데. 초점을 담당하는 곳인 시야의 정중앙에서 들어오는 빛에 우리는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곳에 강한 빛이 들어가면 우리는 어김없이 눈살을 찌푸려 강한 빛이 들어오는 걸 막는다. 고개를 들어 천장의 램프를 직접 바라보자. 또 램프로부터 50 센티 미 떠 떨어진 곳을 바라보자. 같은 지점에서 바라보는 같은 빛인데도, 시야의 어느 곳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눈이 부시거나 부시지 않음이 결정된다. 



그렇게 시야를 고려하여 빛환경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조명의 위치다. 고개를 들어 억지로 바라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주요 동선에서 사용자의 시선에 빛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과정을 거친다. 천장이 높은 것이 유리한 것도 여기에 있다. 천장이 높을수록 중심 시야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더 강한 조명을 더 다양한 배광으로 쏠 수 있다. 높은 천장의 마트형 매장을 가보면 평소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높은 천장에 이렇게 밝은 조명이 있었는지 사뭇 놀라게 될 것이다. 



앉아있는 손님에게도  서있는 직원에게도 눈부시지 않게 고려한 펜던트 높이가 인상적이다.


주요 시야를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조명을 배치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공간들이 생기게 된다. 침대에 누웠을 때 바로 눈 앞에 있는 방등은 어떤가? 하루 종일 누워있는 아기의 방 천장에 램프를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남향인 건 좋은데 왜 낮시간은 오히려 공간이 침침하다고 느껴지는가? 공부할 때 쓰라고 사준 책상 스탠드가 오히려 눈부시진 않는가? 마치 잘못 설계된 밤길의 가로등처럼 말이다.




딜레마는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도 하지만 오히려 그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멋진 빛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탄생하기도 한다. 조명이 단지 예쁘게 생긴 등기구 정도로 생각했다면 빛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 내용을 이해하며 앞으로 눈부시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빛나는 나의 공간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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