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3)
새벽 러닝을 시작하면서 종종 동이 트는 새벽녘의 동쪽 하늘 바라본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하늘이 점차 영롱한 붉은빛을 띠며 밝아져 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따뜻했던 이불을 힘겹게 박차고 나온 부지런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존재다. 사진으로만 본다면 노을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 빛의 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내보면 점차 환해지는 새벽하늘의 붉은빛은 노을의 그것과 전혀 다른 감동으로 찾아온다.
잠시 동안 붉었던 새벽하늘은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점차 하얀빛으로 바뀐다. 시간이 지나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빛은 흰색을 넘어 드넓은 천공광과 함께 푸른빛을 띠게 된다. 그렇게 동쪽에서 뜬 태양은 풍성한 빛을 땅 위에 쏟아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반원을 그리며 서쪽하늘 넘어간다. 이후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푸른빛은 다시 백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을 넘어 붉게 타오르며 찬란했던 하루의 시간을 마감한다.
‘색온도’라는 개념이 있다. 영어로 Color temperature, 그 ‘온도’가 맞다. 이 공감각적인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온도와 빛의 색의 연관관계가 있어 생겨난 단어다. 그래서 색온도는 모든 색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붉은색-노란색-흰색-푸른색 계열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색온도는 캘빈(K)으로 표시하며 3000K는 전구와 같은 오렌지색, 4000K는 이른 노을과 같은 아이보리색, 5000K 이상은 한낮의 태양빛과 같은 푸른색의 빛을 나타낸다. 태양의 하루 색온도는 붉은빛을 띠는 낮은 색온도에서 푸른빛을 띠는 높은 색온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낮은 색온도의 일몰을 맞이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빛의 사이클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태양의 하루 색온도는 붉은빛을 띠는 낮은 색온도에서 푸른빛을 띠는 높은 색온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낮은 색온도의 일몰을 맞이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빛의 사이클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색온도는 인공조명에서도 사용된다. 초기에는 램프의 종류가 어느 정도 고유의 색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발열반응으로 빛을 만들어내는 전구와 할로겐은 낮은 색온도를 나타낸다. 과거 가로등이나 터널 등으로 많이 쓰였던 나트륨 등은 전구보다도 더 낮은 짙은 오렌지빛을 낸다. 전구 이후 개발된 형광등은 형광물질을 통해 빛을 내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빛은 낮시간 태양빛에 가까운 푸른빛을 냈다.
하지만 형광 램프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LED 광원이 사용되기 시작하며 같은 종류의 램프라도 다른 색온도를 내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색온도에 따른 램프 컬러를 구분해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전구색 / 주백색(또는 아이보리) / 주광색이다.
국내 색온도 표기는 영문표기를 그대로 옮기며 정착된 단어로 보이는데 특히 ‘주광색’의 경우 그 말이 한자어로 직관적이지 못한 데다 전구의 램프 색인 주황색과도 헷갈릴 소지가 높아 개인적으로 좋은 작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구 역시 사용이 줄면서 직관성과 연계성이 떨어지고 이름 간 통일성이 없어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warm white / natural white / cool whtie 같이 통일된 명칭을 사용하거나 캘빈(K)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생명체가 자연이 만들어 내는 빛의 사이클을 따라 살아가듯, 사람도 색온도로 인해 신체 리듬과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 한낮의 색온도인 푸른빛의 조명은 사람의 활력을 높이고 집중력을 높이는 각성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하루 중 가장 많은 활동을 하는 시간인 것을 빛을 통해 몸이 적응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늦은 오후와 저녁의 색온도인 붉고 노란빛의 색온도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며, 멜라토닌 생성을 촉진해 수면을 돕는다. 사람의 몸이 밤이 오는 자연의 빛 컬러에 따라 반응하도록 적응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자연 빛에서만 살지 않는다. 현대의 우리는 자연의 빛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인공조명 밑에서 생활하고 있다. 과거에는 빛을 낼 수 있는 광원의 종류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밝힌다는 그 자체로 빛이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램프의 종류와 사용할 수 있는 색온도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용도에 맞는 색온도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 학교와 같은 공간은 높은 색온도의 조명을 사용한다. 주로 공간을 사용하는 시간이 낮시간이며, 이는 활동성과 집중력이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창으로만 들어오는 부족한 자연광을 형광등과 같은 주광색 램프가 보완해준다. 이와는 반대로 카페, 백화점, 화장실과 같은 공간은 낮은 색온도의 조명을 쓴다. 안정을 취하고 편안하고 감성적인 심리상태를 갖도록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잘못된, 혹은 과도한 인공조명에 노출될 경우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함께 가지게 되었다. 낮은 색온도의 조명만이 비추는 실내에서 태양빛을 보지 못하고 낮시간을 동안을 반복하여 일하는 백화점의 직원들은 주광의 푸른빛을 받지 못해 신체적 감성적 활력이 줄어드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푸른색 형광등 아래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자연의 사이클과 어긋난 빛에 노출됨으로써, 휴식하고 수면을 취해야 하는 몸상태를 만드는 데에 방해를 받거나 심할 경우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색온도는 분위기라는 단순한 미적인 영역을 넘어 신체와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된다.
한동안 ‘블루라이트’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바로 스마트폰 모니터에서 나오는 높은 색온도의 빛에 노출되어 생긴 신체리듬의 변화가 수면유도 장애나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착안해 최근의 스마트폰에는 저녁시간이 되면 블루라이트를 줄여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물론 이는 취침 전 수면을 도와줄 수 있는 빛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잠들기 전 생활하는 곳의 조명이 푸른 형광등이라면 작은 스마트폰의 푸른빛을 줄이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
최근 세계 유명 램프 브랜드와 조명회사들, 그리고 가구업체에 이르기까지 램프에 칩을 넣고 리모컨을 달고 사물인터넷을 접목시키면서까지 색온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전에는 색온도가 램프의 종류에 국한되어 있었다가 램프의 종류에 상관없이 다양한 색온도의 제품이 나오는 시기를 거쳤다면 이제는 하나의 램프로도 시시각각 색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독일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시간에 따라 교실 조명의 색온도를 달리한다고 한다. 기운은 내고 집중해야 할 시간에는 높은 색온도의 빛환경을 만들고, 정리하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시간에는 낮은 색온도의 빛환경으로 만든다. 최근에는 이 색온도의 개념이 학생들을 위한 테이블 스탠드 조명의 마케팅 포인트로 사용되기도 한다.
색온도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동의 하지만 한 가지 제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광고하는 것은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본다. 사람의 감정과 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빛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스마트폰 조명 하나로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보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과 생활에서 알맞은 색온도의 빛을 고르고 사용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힌다면,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게 보다 좋은 빛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구는 이미 태양과 대기, 날씨를 통해, 그리고 공전과 자전을 통해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빛의 형태와 양 그리고 색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빛의 모습으로 자연의 빛환경은 이루어지고 또한 반복되며, 그 속에서 사는 인류는 그 빛에 적응하고 또 그 빛은 누리며 살아간다. 이제 인류는 스스로 빛을 만들고 그것을 누리며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빛 역시 자연의 빛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또한 편리하길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빛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