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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11. 2019

한강 다리의 조명이 꺼졌다.

빛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 (2)


2011년, 조명설계회사를 다닌 지 3년 차 되는 해였다. 당시 우리 회사의 주요 업무는 공원, 지하철 그리고 교량 등에 조명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당시 한국은 청계천 복원사업의 성공 등과 함께 각종 공공디자인이라는 키워드가 정점에 이르렀다. 해외 유명 건축가를 초청해 서울의 한가운데에 전에 없는 화려한 건물을 짓기 시작했으며, 한 해 전인 2010년에는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어 서울 시내 곳곳에 각종 디자인 행사가 넘쳐났다. 서울의 야경을 개발한다며 다양한 공간에서 야간경관을 위한 투자와 설비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때였다. 그때는 이런 흐름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 뉴스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2011년 2월, 대한민국의 에너지 경보가 관심단계에서 '주의'로 올라갔다. 리비아 사태로 인해 세계 유가가 급등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은 치솟는 기름값과 물가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한강 다리의 조명 중 절반을 끄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한강 다리의 조명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사회 기반시설에 들어가는 각종 설비의 전기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 '상징성'은 크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강 주변으로 출퇴근하며 보는 한강 다리의 조명이 꺼졌다는 것은 '나라도 이만큼 전기를 아껴 쓰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메시지였다. 그렇게 한강 다리의 조명을 끈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드디어 그 사건이 터졌다.



2011년 3월 11일.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쳤다. 9.0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진 뒤 몰려온 쓰나미였다.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대자연의 힘 앞에 전 세계 사람들이 쳐다만 볼 수밖에 없는 무서운 장면들이 뉴스를 가득 채웠다. 뒤따라 달려오는 쓰나미를 피해 달려다가 결국 검은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자동차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쓰나미의 충격이 온 세계를 뒤덮던 그때 믿지 못할 뉴스가 이어졌다. 바로 후쿠시마 제1원 자력 발전소가 폭파되었다는 것이었다. 규모를 알 수 없는 방사능이 흘러나왔고 이를 두고 수많은 보도와 추측들이 다시 한번 온 세계 뉴스를 뒤덮었다.



2011년 일본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에너지에 대한 전 세계의 관점을 흔들었다.



당시 일본에 진행되던 원자력 발전소 개발계획은 대부분 취소되었다.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는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으며, 에너지 특히 전기 사용에 대한 기존의 사고 전체가 뒤흔들렸다. 인류 전기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원자력은 더 이상 안전한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되었고, 전기를 아껴서 써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에 더 큰 불을 지폈다. 그렇게 수많은 한강 다리의 조명들이 꺼졌다. 그리고 에너지 경보가 해제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불은 켜지지 못했다.



당시 일 년 전만 해도 도시 야간경관에 대해 각종 프로젝트와 심포지엄들이 넘쳐났지만, 그 분위기는 급격히 식고 있었다. 진행 중이던 수많은 경관조명 프로젝트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있는 조명도 끄는 판에 새로운 조명을 설계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자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조명이라는 분야는 한순간에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다. 당시의 나는 억울하기도 했다. 실제로 조명에 들어가는 전기는 사회 기반시설에 들어가는 전기에 비해서 비교도 되지 않게 아주 적은 양이라며, 이건 다 실효성 없는 보이기 식 정책이라며 한강교량 소등에 대해 친구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에서 '상징성'이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어찌 보면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조명을 끈다는 것은 에너지 절약이라는 메시지를 볼 때 들이는 비용 대비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분야가 급격하게 쇠퇴기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20대의 디자이너였던 당시의 나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분야와의 만남이라는 일로 작용하였지만 아쉬운 조명과의 이별이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 수많은 한강 다리의 조명들이 꺼졌다.
그리고 에너지 경보가 해제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불은 켜지지 못했다.




잠시 동안 상징적으로 꺼질 줄 알았던 한강 다리의 조명이 다시 들어오는 데는 그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4년, 드디어 조명이 설치된 한강교량 24개의 불빛을 모두 켜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다시 불을 밝히는 이유로는 소등으로 인해 아끼게 되는 전기세보다 불을 켜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교량 조명의 유지보수 비용이 더 나간다는 점, 중요 이벤트 시 설치된 조명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말 교량의 조명이 필요하지 않다면 있는 조명을 철거하는 결정을 했을 것이다. 불 꺼진 한강 다리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왜 한강 다리에 불을 켜야 할까?



도시에 경관조명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안정성과 심미성이다. 밤에는 달빛이 있지만, 인공조명으로 밤에도 밝게 빛나는 현대에는 달빛만으로 도시를 밝힐 수 없다. 도시를 밝히는 방법도 우리의 공간을 밝히는 방법과 유사하다. 도시의 경관 조명에도 직접 조명과 간접조명이 어우러진다.



직접 조명은 주거환경에서 마치 책상 위나 부엌 조리대를 비추는 조명과 같이 도시의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그 대표적인 예로 가로등을 들 수 있다. 가로등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도로 위 노면을 밝게 비추어 운전자 및 보행자의 이동을 돕는다. 가로등의 배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램프에서 나오는 빛이 얼마나 넓게 확산될 수 있는지와 가로등의 높이,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간격이 고려된다. '균제도'라고 하는 도로의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의 조도비를 기준치보다 낮추기 위해 노력하며, 그 균제도는 도로를 이동하는 이동체의 속도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달리는 자동차, 자전거, 도보 등 각각 이동하는 사람이 불편을 겪지 않을 정도의 밝기 차이 및 간격으로 기준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기준을 바탕으로 가로등의 배광, 높이, 배치가 최종으로 결정된다. (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단지 그저 도로를 밝히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로등이 우리가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고려되어 설치된다는 것 정도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가로등의 세계는 생각보다 치밀한 계산 속에 설계된다.



간접조명은 도시 전체의 야경을 보다 아름답고 풍성하게 보이도록 한다. 또한 낮에 비해 거리감이 떨어지는 야간환경에서 거리와 사물의 크기, 공간의 넓이를 짐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한강의 다리 조명은 간접조명의 예 중 하나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야경의 요소가 될 뿐 아니라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그리고 도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 준다. 높이 솟은 건축물의 조명은 각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여 이동시 위치를 알려주고, 주변에 빛을 공급하는 간접조명으로써의 역할도 동시에 한다. 경복궁, 수원화성 등 지역 특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의 조명은 지역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도 작용한다. 나무에 빛을 비추는 수목조명, 교량 하부를 비추는 투광조명 역시 자체로 훌륭한 경관조명이자 안전조명의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고가 하부의 경광조명, 공원과 하천 주변을 밝히는 조명, 건물을 밝히는 조명, 탑과 조형물을 밝히는 조명들은 마치 우리 주거 공간의 화초와 테이블,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밝혀 풍성한 빛환경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 빛은 단지 아름다워 보이는 심미적인 요소뿐 아니라 간접조명을 통해 어두운 환경을 은은하게 밝히는 역할을 한다.



야간 조명은 이 시대 도시의 활력과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부문별 한 간판조명, 광고조명, 상점 조명등은 높은 밝기와 대비로 눈부심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너도 나도 돋보이기 위해 밝힌다면 빛 자체도 공해가 될 수밖에 없다. 전력의 낭비와 과도한 빛공해가 발생되지 않을 효율적인 조명 설계가 무엇보다 필요하며, 눈부심을 줄이고 좋은 빛환경을 만들기 위한 규제들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노력들도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빛은 무엇일까?



나는 한강의 야경을 좋아한다. 넓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정교한 구조의 교량들을 비추는 아름다운 빛이 출렁거리는 강 표면에 일렁이는 모습은 서울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한강 다리의 빛은 돌아왔지만, 안전과 아름다움 그리고 환경과 인류의 미래 사이에 해야 할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에너지 위기가 온다면 한강 다리의 조명은 또 꺼지게 될지 모른다. 그때마다 어두워진 한강을 보며 처음부터 다시 한 번씩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빛은 어떤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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