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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Jan 06. 2021

한 번의 실패가 가져다준 선물

두 번째 출간 계약을 하다.



비공개로 적어놓았던 작년 이맘때의 일기를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새로 다가온 2020년의 기대나 희망 속에 지냈겠거니 했던 나의 어렴풋한 기억과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에는 얼마 전 제출한 이력서 불합격 소식과 함께 2019년 브런치북 공모에 떨어져 한껏 주눅 든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2019년 여름 퇴사를 했다. 창업 멤버로 시작해 8년여간 키워온 회사로부터였다. 당시 성장하는 회사의 이인자였던 나는 한 해에 한두 번씩 몸과 마음이 크게 아플 만큼 지쳐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다니며 살 궁리를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러운 퇴사를 맞이했다.


잠시 동안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첫 직장이었던 조명설계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쌓아왔던 빛과 조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작은 쉬는 기간 동안 남길 생산적인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글의 반응이 좋았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런치북 공모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왕 하는 거 잘 써서 출품해보자 하는 마음에 몇 주간 공들여 글을 쓰고 작품을 제출했다.


개인 블로그 한 번 운영해보지 못한 내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공모전이 아닐까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대한 의외의 좋은 반응들, 운명 같은 타이밍에 나타난 공모전으로 인해 기대감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진짜 당선되면 어떡하지 하는 기분 좋은 상상으로 2019년의 연말에 다다르고 있었다. 거기에 헤드헌터를 통해 대기업 건설사에 이력서도 냈다. 이렇게 과감한 퇴사 뒤, 나의 새로운 2020년은 화려하게 피는 건가 하는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퇴사 후 우연한 기회를 실력으로 잡아 승승장구하는 히어로는 현실에 없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지원했던 기업은 이력서 단계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브런치북 수상 명단에서는 그 어디에도 내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퇴사 후 우연한 기회를 실력으로 잡아 승승장구하는 히어로는 현실에 없었다. 적어도 2020년 초 그 당시에는 말이다. 그렇게 의기소침한 채로 2020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를 통해 한 작은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 빛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담당 편집자님과 몇 번의 미팅 후에 계약을 했다. 이제는 정말 해냈구나. 곧 책이 나오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사에 문제가 생겼다. 나를 발굴하고 담당했던 편집자님은 더 이상 그 출판사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책을 내겠다고 했지만 한 번 어긋난 관계와 마음은 쉽게 다잡아질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나마 내가 책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 밀려왔다. 하지만 만약 그 정도의 글이라면 겨우 낸다고 해도 이내 사라질 책이 돼도 이상하지 않겠지. 고심 끝에 나는 결국 출판사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마음속에선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두 번이나(염치없게 브런치 공모전도 포함) 반복했다. 그럼에도 글을 꾸준히 써 내려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니까. 결국 필요한 건 언젠가 만나게 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 과정들은 결과적으로 나와 내 글을 더 탄탄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머릿속 품어온 지식들이 바닥을 보이자, 공부를 시작했다. 국내에는 관련 서적이 너무 부족한 분야였기에, 해외 자료들을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은 실로 엄청났다.) 글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검증을 받을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첫 직장의 소장님께 찾아가 조명 전문가로서 감수를 부탁드렸다. 내가 좋아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분께 다짜고짜 메일을 보내 제 글을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리기도 했다.


원고 투고를 위해 책이 왜 필요한지, 누구에게 필요한지, 어떻게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했다. 일주일 몇 번씩 서점을 휘젓고 다니며 투고하고 싶은 100개의 출판사 리스트를 작성했다. 100개의 리스트는 다시 원하는 출판사 순으로 정렬되었고, 1번부터 100번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1번부터 차례대로 투고해 연락이 없으면 100번에 다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리스트는 반의 반도 사용되지 못했다. 무려 1번으로 적어놓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원고를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검토기간은 한 달여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마음속 1순위였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사실에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또다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역시 존재했다. 한 달이 좀 더 지난 시점, 출판사로부터 계약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끊은 뒤, 육성으로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 햇볕이 유난히 좋았던 11월의 어느 날, 나는 서명이 된 새 계약서를 들고 출판사를 걸어 나왔다.


2020년을 마무리하며 2019년을 마무리하는 당시의 나를 돌아보았다. 만약 그때 브런치 공모전에 수상했더라면 나 자신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기회 없이 기한 내 책을 내기 위해 정신없이 달렸을 것이다. 그 당시 건설사에 합격했더라면 프리랜서로 큰 기업과 직접 일하고, 한국 조명연구원에서 강의를 하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토록 원하는 출판사와 직접 계약을 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늘 현재에 갇혀있는 우리의 시야는 얼마나 좁고, 우리의 삶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를 돌아본다. 물론 그것은 2021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2021년을 다 지내고 난 올해의 마지막 날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또 지금 가지고 있는 나의 계획과 기대, 불안과 걱정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내 앞에 놓인 돌이 걸림돌인지 디딤돌인지는 돌의 형태가 아니라, 돌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 달려 있다.


실패에 너무 큰 좌절을 하지는 말자. 실패 너머 보이는 새로운 기회를 찾자. 내 앞에 놓인 돌이 걸림돌인지 디딤돌인지는 돌의 형태가 아니라, 돌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 달려 있다. 우리 앞에 나타날 수많은 돌들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올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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