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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Feb 10. 2021

주관 없어도 정말 괜찮아.

ep.49 넬(NELL)_청춘연가


나의 서른둘 초반의 키워드는 이직이다. 1월 자로 새로운 직장을 다니게 됐고 이제 막 한 달이 된다. 신입을 둘러싸고(?) 새로운 팀원과 팀장님, 임원 분들은 돌아가며 질문을 하셨다. 관심의 표현이자 나를 알고 싶은 호의에서 시작되는 질문들. 가벼운 질문들이지만 대답이 어려웠다.


어디 살아요?

- 수원 영통 쪽에 살고 있어요.

뭐 좋아해요?

- 축구 좋아해요! (눈빛 초롱)

다른 취미는?

- 음...

좋아하는 음악 있어요?

- 음...

좋아하는 연예인은 있어요?

- 음...


호불호가 강하지 않은 사람에겐 이런 질문에 어려움이 많다. 좋고 싫은 게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자주 바뀌기도 하고. (수플레 노래를 고를 때도 2주 가까이 고민했다) 왜 나는 호불호가 강하지 않고, 어중간해 보일까?


어릴 적 주관이 뚜렷하고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결정하고, 자신의 것이라 단호히 말하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해 보였달까. 반면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경험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처럼 보였다. 질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하고 경험이 부족해 자신만의 답을 못 찾은 거라 여겼다. 그런 이유도 한 몫하며 학창 시절에 꽤나 많은 경험을 쌓았다. 대외활동과 해외봉사, 기자단 등 수많은 인연을 만나 경험의 폭을 넓혔다. 그 경험을 기반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경험을 많이 한다고 주관이 명확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 인디밴드를 좋아한다 하기엔, 힙합과 올드팝도 좋았고 어떤 때는 아이돌 노래만 한 달을 반복해 듣고 있었다. 좋아하는 축구팀도, 축구 선수도 자주 바뀌었다. 이상형도 섹시한 사람이, 때론 귀여운 사람도 좋았다가 차분한 사람이 좋기도 했다. 거창하게 '꿈'을 떠올릴 땐 더욱 그랬다. 미래는 수없이 바뀌고, 계획을 세우기보다 그저 묵묵히 바로 앞에 해야 될 일들을 쳐내는 경우가 많았다. 뭘 좋아한다고, 뭘 싫어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살다 보니 나라는 사람은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도 아니고, 관심분야는 다양했지만 내 것이라고 말할 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고, 남이 편해야 본인이 더 편해지는 사람도 있다. 하루하루 가족을 위해 큰 생각 없이 일터로 출근하는 아버지도 있고, 그날그날 페이스북과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보는 친구도 있다. 어쩌면 주관을 강요하는 것도 하나의 강압이자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정을 잘 못하거나, 명확한 답을 못 내리는 사람에게 우유부단하다고 일컫는다. 좋아하고 잘하는 거 하나 없냐며. 생각해보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역으로 매 순간 정답이 결정돼 있다는 건 생각을 정답 안에 가둬두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도 든다. 모든 일들에 대해 자신만의 정답이 있으면 사고의 확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주관이 없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경험과 다채로운 생각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정답 없는 이에겐 수많은 가능성 모두가 정답이 된다.


마음 가는 대로 지내다 보면, 더욱 나이가 들었을 때 가장 손길이 많이 가는 행위가 본인의 주관이 될 것 같다. 정체성 찾고자 억지로 주관을 고르고 밀어붙일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 내 모습이 오롯이 받아들여졌다. 서른둘도 모를 수 있고, 좋고 싫은 게 없을 수 있다. 애써 찾을 필요 없고 부끄러울 필요 없는 일이었다.


https://youtu.be/r2lffy84yQE

https://youtu.be/JltVummC71Y

2017년, 80년생 동갑 뮤지션끼리 만든 무대

글을 쓰는 내내 반복 재생해서 들었던 넬의 청춘연가. 말 그대로 청춘시절을 회고한 가삿말과 잔잔한 멜로디로 글을 쓰다 몇 번 몽롱(?)해졌다. (새벽 청취 주의) 김종완은 위 노래를 서른다섯 살에 만들었으니, 서른둘의 나도 얼추 감성이 공유되는 나잇 대라고도 볼 수도 있겠다. 별생각 없이, 눈치 없이, 좋고 싫음 없이 흐물거리는 작은 나뭇가지 같은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내 나뭇가지는 불안하지 않게 흔들거린다.


과거 한 고등학생이 현대카드 정태영 회장에게 성공적인 CEO가 되기 위한 방법을 물었고, 정회장은 친절하게 메일로 회신을 줬던 적이 있다. 나이 들며 나만의 답들로 조금은 단단해져야 할까 하는 고민에 좋은 답안이 된 것 같아 , 답신의 일부로 글을 맺는다.


끝으로 당부의 말 한마디만 더 합니다. 제가 보기엔 김영훈 군은 나이 또래에 비해 많이 성숙하고 부모님들도 자랑스러워할 학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지나친 성숙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장래의  일에 너무 이른 나이에 함몰되지 마세요.  현대카드 사장과의 대화보다는 친구들과의 치기 어린 대화가 아직은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사업을 꿈꾸고 자신을 사업하는 기계로 조련하면 조급한 마음에 지칠 수도 있고 여유, 포용력, 균형 등과 같은 더욱 중요한 단어들이 경시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 공부에 전념하고 신문을 읽으며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는 소양을 쌓는 정도가 제일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김군 스스로의 순수함과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무한한 잠재력에 아직은 더 시간을 주고 즐기셨으면 합니다. 젊음의 가장  무기가 끝없는 불확실성 아닌가요? 

        



대외활동을 같이 했던, JUDY님의 추천으로 수플레 2기 멤버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잠시 꾸었던 ‘기자’의 꿈은 포기하고 평범한 회사를 다니며 블로그로 일상적인 글을 쓰고 있었는데, 플랫폼을 갖추고 정기적인 글을 쓰는 모임에 들어오게 돼 영광입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JUDY님을 비롯한 수플레 식구들에게 감사드리며 숟가락 얹습니다 :)


우스갯소리로 수플레 작가로 선정된 것이 2020년 가장 기쁜 일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습니다. 수플레 작가로 글을 쓴 일이 2021년 가장 기쁜 세 손가락 안에 들도록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고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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