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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Jan 27. 2021

언젠가 다시 축하할 너의 생일에

ep.47  Vanessa Carlton_A thousand miles

 

벌써 새해 첫 달의 마지막 주네요.

1월의 마지막 주에 쓰는 글에 가장 쉽게 붙을 수 있는 첫 문장인 것 같아 조금 새로운 첫 문장을 붙여보고 싶지만, 꾸준히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이제야 첫 글을 쓰게 되었으니 적당한 문장인 것도 같습니다.

 브런치에 쓰는 두 번째 글은 올해부터 참여하게 된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수플레>의 47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수플레는 매주 수요일마다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들이 본인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에요.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소개한 노래를 듣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보물 같은 곡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요.

 벌써부터 소개하고 싶은 곡들이 정말 많지만 오늘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절의 기억이 담긴 노래를 하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아끼고 아끼는 오랜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으로요.





 

 1월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달은 아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 있는 달이에요. 예상하셨듯이 저의 생일이 있는 달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생일에 대한 기대감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생일은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고맙게도 올해도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리 왕래가 잦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축하 인사를 받고 요즘은 선물 보내기가 더 간편해진 덕에 선물도 잔뜩 받았어요. 예전에는 1년에 겨우 한번, 생일에만 안부를 묻는 사이가 오히려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축하한다'는 짤막한 생일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도 모두 고맙게 느껴집니다. 갈수록 바쁜 하루 중에 그 짧은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배가 부르도록 고마운 축하들 덕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더군요.

역시나 생일은 가장 좋은 날이에요. 아마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럴 거라고 확신해요.




 거리두기 탓에 크게 생일 파티를 하지는 못했지만 수플레를 함께 쓰는 두 작가님들과도 소소하게 생일 기념 모임을 가졌습니다. 푸짐한 식사를 차려 먹고 거실에 누워 넷플릭스로 영화를 봤어요. 그날의 영화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칠월'과 '안생'이라는 이름의 두 친구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칠월'과 '안생'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제목처럼 '소울메이트'인 친구입니다. 이 주인공들의 성격과 앞으로 흘러가게 될 스토리는 러닝타임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예상할 수 있어요.

안정된 가정 속에서 반듯하게 자라와 살아온 동네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는 '칠월'과 어디로 튈지 몰라 늘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사랑스러운 '안생', 그리고 칠월의 남자 친구 '가명'. 


영화의 초반부터 '안생'과 '가명'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보는 순간 이 영화의 전개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기 시작합니다. '헐' '안돼'를 중얼거리다 보면 영화는 빠르게 두 친구의 갈등을 그리며 달려가죠. 영화의 후반부에 반전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내용은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인 영화 스토리보다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영화 속 두 친구의 모습.

같이 한 욕조에서 목욕을 하며 성장해가는 서로의 몸을 관찰하기도 하고, 마음 편히 지낼 나만의 방 하나 없는 '안생'을 '칠월'의 집에 데려와 부모님과 함께 따뜻한 밥을 먹기도 하죠.


둘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함께 있으면 혼자서는 하지 못할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입니다. 친구의 첫 남자 친구를 보면 마치 친구를 뺏긴 것 같은 기분에 서운해지기도 하고, 화가 나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하지만 이내 그 말에 상처 받았을 서로의 눈을 보며 엉엉 울어버리고요. 상대가 미워 진실을 따져 묻고 싶어도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해 깨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그러지 못하기도 하죠.

그 모습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 하다가도 시큰했어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칠월'과 '안생'을 보면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때는 영혼을 나눈 듯 소중했던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지금도 가깝고 소중한 친구들은 있지만, 많은 것이 처음이었던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이라 늘 기억 한편에 깊숙이 박혀 있는, 그런 친구들이에요.



 저와 쌍둥이 동생, 그리고 두 명의 친구들.

열네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마치 소울메이트처럼 온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입니다. 나이도 같고 사는 동네, 학교도 같고 나중에는 같은 학원까지 다녔으니 정말 온종일을 붙어있었죠.

오늘 소개하고 싶은 노래는 들을 때면 그 친구들이 떠오르는 노래에요.

국내에서도 유명한 미국의 코미디 영화인 <화이트 칙스>의 주제곡, Vanessa Carlton의 <A thousand miles> 입니다.


가끔 학교를 마치면 한 친구의 집에 모여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비디오를 보곤 했는데,

 <화이트 칙스>는 그중에서도 재밌어서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던 영화였어요.

이 노래는 특수 임무를 위해 부잣집 백인 자매로 분장한 두 흑인 경찰이 자매의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달리며 듣던 노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C7u5Kud1Y0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가 매력적인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백인 자매와 친구들의 '최애곡'입니다.

백인 자매 분장을 한 흑인 경찰들이 어색하게 따라 부르다 이내 다른 노래로 넘겨버리는 탓에 짧게 등장하지만, 그 시절 영화 속 이 장면이 너무 좋아 영어 가사를 외워 노래방에서도 이 노래를 함께 부르던 기억이 나네요.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종일 이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 넷이 함께 타고 <A thousand miles>를 들으며 달릴 귀여운 차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넷이 같이 차릴 가게의 구조를 그려보기도 했어요. 상상만 해도 마냥 즐거웠죠. 그때에도 이 모든 게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 관계가 영원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거든요.


 그렇게 가깝던 친구들과도 고등학교가 달라지면서 서서히 멀어져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는 일 년에 겨우 한번, 생일에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사이도 이렇게 멀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아쉬워지다가도, 이내 각자의 앞에 놓인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아쉬움도 조금씩 옅어졌어요.

 특히 그중 한 친구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진 이유 중 하나는 SNS를 통해 접할 때마다 다소 실망스러운 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안타깝고 화가 나다가도 이제는 나와는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니까, 하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생일이면 그 친구는 꼬박꼬박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매번 메시지의 제일 첫 문장은 '나의 00년 지기 친구'로 시작하면서.

 '우리가 이렇게나 오랜 친구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던 그 문장도 해가 갈수록 점점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관계에도 연속성이라는 게 있을 텐데 1년에 겨우 한번 연락을 주고받는 뜸한 사이에도 '0년 지기'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내 생일은 1월, 친구의 생일은 2월. 생일 간의 거리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생일 축하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나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게 당연한 순서였지만 언젠가부터 생일날이 되어도 연락하기가 망설여지는 횟수가 잦아지고, 그렇게 어물쩡 몇 번의 생일을 넘어가던 어느 해. 아주 오랜만에 다시 그 친구를 만난 건 용인의 한 나무 아래에서였어요.


 이름을 새긴 돌 하나 없는 텅 빈 흙 위를 보고 있으니 그 작은 공간 아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동생과 함께 아무 말 없이 흙을 밟아주고 돌아오던 날, 이제는 휴대폰을 뒤져봐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친구의 흔적을 찾다가 무심코 열어본 페이스북 메시지함에는 지난해 1월, 친구가 보낸 축하 메시지가 남아 있었어요.

생일 축하한다며 올해는 꼭 한번 보자는 친구의 메시지에 무심히 '그러자'라고 답한 나의 짧은 메시지가 대화창의 마지막이었습니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 미처 다 읽지 못한 생일 축하 메시지들에 답장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생일은 끝나 있고, 하나하나 다시 읽어본 메시지들에서는 오늘을 축하할 몇 문장을 고민했을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몇몇은 아마 1년에 겨우 한번 하는 연락에 머쓱해 잠시 망설였을 테지만 이내 손가락을 두드려 축하의 마음을 보냈을 메시지도 보였고요. 예전과 달리 이제는 그 뜸한 메시지에 대한 서운함보다, 머쓱함을 무릅쓰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어요.

 '1년에 겨우 한번'인 이 연락이 서로의 관계를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느끼게 되는 것이 멋쩍어 한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곧 다가올, 언젠가 다시 함께 축하하고 싶은 친구의 생일.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꼭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고 싶어요.

그리운 마음을 눌러쓴 메시지와 함께, 우리의 기억이 담긴 이 소중한 노래도 함께 보낼 수 있으면 더 좋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Cwkej79U3ek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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