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에는 매년 호랑이 바람이 불었다. 계단수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의 집은 가파른 계단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있었다.
할머니는 달동네에선 가장 노령이었고 거동이 불편해 이웃들은 항상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 날은 호랑이 바람이 크게 불었다. 그 바람이 불 때는 꼭 누군가 다치는 일이 생겨서 어느 날부터 호랑이 바람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노인을 걱정하던 젊은이들이 계단 에 나왔고 그들 또한 60~70이 넘은 젊은 노인들이었다.
'여 김 씨 여기에 깔자고 할매가 여기 디디면 바로 엎어지겠구먼'
'에고 할무니 올해도 우리 때문에 살았네'
두 노인이 껄껄 웃는다. 그들은 러닝 셔츠만 입은 채 춥지도 않은지 신나게 거적때기를 옮겼다. 계단 중턱엔 살얼음이 얼어있었다. 그 위에 거적을 올리니 발을 갖다 대도 전혀 미끄럽지가 않다.
'좋네 좋아, 다음에 할매한테 국밥이나 얻어먹고마'
'어 김 씨 근데 거기 날리는데 오메 이 번 바람은 무지 세네'
두 노인이 땀까지 흘려가며 들고 온 거적때기는 호랑이 바람에 연신 들썩거렸다. 몇 번을 당겨놓아도 계속 움직여 살얼 음이 드러난다.
'하아 애먹이네. 황 씨 짱돌 없소!'
'아 짱돌 그래'
황 씨가 계단을 급히 뛰어올라가 두 손으로 커다란 돌을 힘겹게 들고 온다.
'여기 짱돌! 할매 집에 있는거으어차!
짱돌을 귀퉁이에 올리자 거적이 센 바람에도 꿈쩍 하지 않는다.
'됐네 역시 짱돌이 최고여 요게 사람보다 낫네'
두 노인이 또 껄껄 웃다 어느새 코피 처럼 또르르 떨어지는 콧물을 닦아내며 사라졌다.
이렇게 짱돌은 몇 년째 달동네에서 할 머니를 지켰다. 젊은 노인들은 매년 까먹기라도 한 듯 거적을 옮긴 후 호랑이 바람이 불면 날아가려는 거적을 고정시키기 위해 할 머니 집에 있는 커다란 짱돌을 들고 왔다.
하지만 올해는 노인의 수명이 다 한 것일까. 이번엔 다른 사람이 먼저 짱돌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날아가지 말라고 가져다 놓은 것 같은데… 너무 위험하게 생겼다'
달동네에 새로 입주한 한 젊은이는 호랑이 바람의 위력을 모르고 작은 돌 멩이 여러 개로 짱돌을 교체했다. 얼마 후 호랑이 바람은 더 세게 불었고 거적때기가 들리며 돌멩이들이 데구르 르 흩어졌다. 그리고 무거운 거적때기는 바람에 몇 번 들렸다가 내려앉고 결국에는 계단을 타고 스르르 사라졌다.
이후 몇 노인들이 얼음을 밟고 엉덩빵 아를 찧었고 예의 고령의 할머니도 계단에서 철퍼덕 넘어졌다. 할머니는 툴툴거릴 기력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숨을 거두었다.
한편 짱돌에게는 임무가 있었다. 짱돌은 할머니의 집에서 오래 고여있던 돌인데 할머니를 지키는 집의 수호신 이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죽자 짱돌도 따라서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너의 삶은 자리 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었고 자리에서 나와서는 끝까지 남을 위해서만 살았구나. 선하구나. 선하도다,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환생하게 되리라'
하지만 짱돌이 말했다. '대왕님 저는 저의 주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슬픔이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에 한을 남기는 일인지 그때는 몰 랐습니다. 한 가지 청이 있사온데 제 다음 생은 누군가를 지키는 삶보다 누군가에게 지킴 받는 삶을 살도록 해주 시옵소서'
대왕은 고심을 하다 짱돌의 다음 생은 인간의 보살핌을 유달리 받는 개로 태어나도록 정했다. 그중에서도 개를 너무 사랑해 짱돌의 전생까지도 사랑해줄 수 있는 인간을 골랐다. 그것이 평생 한 인간만을 지켰던 짱돌에게 주는 보상이었던 것이다.
짱돌은 이후 호두 댁이라는 주인의 집에 풍산개로 태어났는데 풍산개는 호랑이를 잡을 만큼 용맹한 개지만 전생의 기억으 로 호랑이는커녕 고양이와 싸울 엄두 도 내지 않았으며 집 앞의 계단을 오르 내리기도 두려워했다.
특히 전생에 새로운 돌멩이의 등장으로 임무를 다하지 못해서 일까 뭔가 새로운 물건을 보면 안절부절 불편해했다. 그만큼 짱돌에게는 그때의 일이 무의식 에 깊게 남아있던 것이다.
그러나 여하간 짱돌은 지금이 너무 행복했다. 누군가의 지킴을 받는 것이 이토록 든든한 일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할머니가 생각났고 아무도 없을 때면 홀로 지키지 못한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상스레 호두 댁이 해주는 밥은 할머니의 밥과 맛이 같아서 짱돌은 밥을 먹을 때면 그 아픔을 잠시 동안 잊 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