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덕후가 됐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게 나에게 던지는 첫 질문이었다. 정신 질병이 있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코로나가 터졌다. 오히려 이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낮에는 방송대 공부를 하고, 밤에는 드라마 유튜버 작가로 활동했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내가 유일하게 숨을 쉬는 구멍 딱 세 가지. 신앙과 드라마 그리고 글쓰기. 나는 무작정 잡코리아에 들어가서 '작가' 타이틀을 검색했다. 그러자 옥수수 털이 마냥 우수수 작가 관련 공고 모집이 떠있었다.
처음에는 안광이 돌며 열심히 공고를 찾아봤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턱을 괴고 안광이 사라져 갔다. 그러다 신생 채널에서 드라마 스토리텔링 작가를 모집하는 글을 발견했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회사 쪽에서 주어진 드라마를 주면, 그 드라마를 보고 내레이션 자막을 쓰는 것이다. 프리랜서라 주어진 일을 완수하면 회당 주어지는 급여가 있었다. 그 길로 바로 포트폴리오를 쓰고, 자소서를 썼다.
당시 드라마를 소개해주는 유튜버는 이제 막 흥하는 중이었다.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튜버들이 많지만, 내가 일할 때는 신생 채널이 많았다.
그런데 웬걸, 합격 전화가 와서 그날로 일하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계약서도 작성했다. 처음에는 피드백은 물론이고 착오가 많았다. 그래서 다른 드라마 소개 채널을 돌려보고, 참고하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진 드라마를 소개하자니 쉽지 않았다. 내 생각이 들어가선 안 됐고, 장면을 똑같이 설명해선 안 됐다. 당시 쓴 자막 대본이다.
감사하게도, 약 1년간 함께 일했다.(지금은 없어진 채널이지만..) 다수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장르의 폭을 넓혔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유일무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이런 사람도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울부짖는 날이 있어도 지나간다고. 후일담으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아침에 3시간, 저녁에 3-4시간씩 쪼개서 앉아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이 불안정했다.
그래도 나의 대본을 시작으로 영상이 만들어지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나도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상상으로 꿈꿔봤지만, 이때처럼 도전한다면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급여는 병원비로 쓰고, 생활 필요한 곳에 사용했다.
몇 년 후, 다른 곳에서도 일해봤지만 잘 맞지 않아서 그만뒀다. (방식과 스타일이 달라서 당장 한편도 쓰기 어려웠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나를 받아준 회사를 생각하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채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현재 나의 포트폴리오는 구석에 있고, 수많은 대본들은 사라져 있다. 더 이상 이 길을 걷지 못할 것을 깨닫고, 과감하게 휴지통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5명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그러나 나는 이 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면전에서 듣고 나왔다. 엄마의 조언을 들었던 것도 있다. ' 너 거기 다니는 거 알면 아빠 난리 난다. ' 아무튼 드라마 대본 작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드라마를 업으로 삼을 때와 생각 없이 즐겨 볼 때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사실 방송대 다닐 동안은 집 밖을 안 나갔어서 일화가 없지만, 그래도 프리랜서 일이 마무리되고, 동네에 20분 거리에 새로 생긴 편의점에서 다시 일했던 것을 생각하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마다 기도했었다. ' 주님,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을 붙잡아 주세요. 저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저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들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 이렇게 살아선 희망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저 하루하루 숨 쉬는 게 버겁고, 나의 자아를 부정했다. 그렇게 저기 저 멀리서 등불이 비치는 것도 모르고 수없이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내 손에는 늘 나만의 해를 가지고 있었단 것을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달과 해를 가지고 있다고. 때가 다를 뿐, 빛이 안 보인다고 해서 당신의 빛과 반짝이는 별이 곁을 떠난 건 아니다.
관련된 상황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중 좋아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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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직장 동료인 고윤은(항문외과 의사) 다은(정신과 간호사)을 좋아한다. 그는 다은에게 좋아한단 고백을 하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신 병동에 입원했었던 다은. 퇴원하고 고윤을 다시 만난 장면이다.
# (보영) 다은역 : 정신과 치료받은 사람이, 정신과 간호사를 어떻게 해요?
# (우진) 고윤역 : 그럼 내가 항문 치료를 받으면 더 이상 항문외과 의사가 아닌 거예요?
# (보영) 다은역 :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 (우진) 고윤역 : 똑같아요 나한테.
왜 병을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피하려고만 해요?
병은 그냥 병일뿐이잖아.
다은 씨를 내가 왜 좋아하는지 알아요? 다은씨의 반짝거림이 너무 좋았어요.
환자를 바라보는 눈,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반짝거리고 예뻐서.
물론 단순히 그 걸로만 다은 씨를 좋아한 건 아니야, 아니지만.
다시 반짝거리면 돼요.
# (보영) 다은역 : 그게 쉬울 거 같아요?
제가 조금만 우울한 모습 보여도, ' 어? 이 사람이 다시 우울증 생겼나? 눈치 볼 거고,
이 사람이 약은 먹었나, 안 먹었나 ' 하루 종일 신경 쓰일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그만해요.
# (우진) 고윤역 : 근데 다은선생님이 자기를 스스로 깎아서 얘기하는 거, 그거 나한테 미안해야 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왜 그렇게 나쁘게 이야기해요?
그럼 그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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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드라마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