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테크니션 수습기간
밖으로 나가는 게 괜찮아질 때 즈음, 동물 병원 취업을 알아봤다.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에 취업이 되었다.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 급여가 적었다. 주 3일 출근, 3개월 동안 지켜보고 정직원으로 채용할지 판단한다고 했다.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경험담에 대해 써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많았다. 이 병원만 생각하면 원장님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게 많아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서 원장님 앞에서 울기도 했다. 나를 왜 그렇게 까지 대하시냐고. 그때 돌아온 말은 하나였다.
" 내가 너를 쫓아내려면 여기서 더 했겠지.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 "
충격이었다. 일이 어려운 건 맞았다. 선배 수의테크니션 분들도 잘 알려주시고, 몇 주간은 쉬운 업무를 하다가 점차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마감 때는 다들 퇴근하고 불이 꺼진 병원에서 그날 처리해야 될 회계 자료를 처리하다가 늦게 퇴근하기도 했다. 공책을 하나 사서 영어로 써진 약 영수증을 마구 붙여서 무작정 외우고, 검색하고 익히기 시작하자 어느 정도 쉬운 약은 알아서 만들었다.
퇴근 때 1시간은 원장님과 나만 일했다. 그때 보호자님들이 오셔서 설명을 받으실 때 나는 배운 게 없어서 버벅 거리며 설명드리고 금액만 말씀드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는 원장님의 말.
" 선생님, 제 방에 좀 들어오세요. "
" 수액 관련해서 뭐 한 게 없는데 왜 말한 거야? "
" 죄송합니다. "
무서웠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방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말이 길어졌다.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나에게 늘 부족하단 말을 했고, 정직원이 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하란 말을 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이런 말도 했다.
" 내가 네 자소서를 다시 읽어봤는데, 이거 다 거짓말이지? 진짜 맞아? 아닌 거 같은데. "
이제는 내가 쓴 자소서를 의심하고 내 존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태 들은 말 중에 제일 황당한 말이었다. 대체 내가 왜 그걸 거짓말로 쓸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냥 단지 나는 원장 스타일과 안 맞았고 수의 테크니션 일도 안 맞았을 뿐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 면접 보러 온 사람 중에 경력직도 몇 명 있었는데, 그래도 널 뽑았거든? 근데 넌 기대 이하야. "
이 말을 듣고 안 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긴 듣기 좋은 말, 칭찬을 하는 사람이 못 된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다 가족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 좀 보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사람도 자기 가족에겐 다정할 수 있구나. 인간은 참 입체적인 것 같다.
원장님은 강아지 방사선 실에선 뜻대로 안 되면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그 뒤로 하루에 밤을 2시간씩 자며 불안에 떨다가 출근했다. 도대체가 하루도 좋은 말을 듣는 날이 없었다. 내 우울에 지친 엄마는 그냥 관두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대로 사직서를 뽑아서 사유서를 쓰고 출근 안 하는 날 가서 정중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사직서를 꺼내 보여드렸다.
"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와 이 일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선배가 그랬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처럼 직접 사직서를 들고 와서 말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참 예의 있고, 바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났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고. 그걸 겪었다. 그래도 3개월을 채우고 나니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 일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을 하면서 자격증도 땄다고 들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을 배우고 싶었다.
사실은 이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분노가 오르지만, 자꾸 좋은 것들로 채우고 그때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 말도 아니고, 주변 사람 말도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내 손에 뜨거운 돌멩이를 쥐고 있기보단, 아름다운 꽃을 들고 있고 싶다. 언젠가 이 시절을 생각하면 그땐 그랬지, 근데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하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