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다. 글은 시간을 품은 형식이자, 시간을 통과하는 언어의 궤적이다. 누군가 던진 문장이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삶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반면, 수많은 글이 쓰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다시 돌아보는 이 없이 사라진다.
왜 어떤 글은 오래 남고,
어떤 글은 순간에 소모되어 버리는 걸까?
글의 시간성은 ‘진리의 결’과 맞닿아 있다. 시간을 견뎌낸 글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도 다시 읽히는 이유를 품고 있다. 그 글들은 시대를 넘나들며 여전히 어떤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은 유행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시대가 달라질수록 더 선명해진다.
이런 글은 진리에 가까운 결을 갖는다. ‘진리’라 함은 단지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유효한 깨달음을 뜻한다. 그러한 글은 독자에게 한 시대의 사고가 아닌, 존재의 중심을 건드린다. 그래서 그 문장을 읽는 이들은 그 순간 자신의 시간으로 그 글을 겪게 된다.
오래 남은 글에는 ‘내면의 시간’이 배어 있다. 훌륭한 문장은 단지 정보의 통로가 아니다. 내면의 움직임을 동반한 시간의 흔적이다. 어떤 글이 오래 남느냐? 그 글 속에 저자의 고통, 망설임, 응시, 기다림, 포기가 들어 있어야 한다. 마치 문장을 쓰기까지의 시간, 말해지지 않은 침묵과 싸움의 흔적이 배어 있어야 한다.
한 문장을 위해 며칠을 버티고, 한 단어를 위해 수많은 문장을 버린 경험, 자기 생각과 싸우고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했던 절망의 시간은 글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읽는 이들은 그 무게를 안다. 그 글을 읽으며 ‘이 글을 쓴 사람도 나처럼 견뎌냈겠구나’라는 공명을 듣는다. 그 시간은 진실하고 오래 남는다.
글은 읽는 사람의 시간을 열어야 한다. 읽는 사람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시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시간 감각’을 깨워야 한다. 어떤 글은 사람을 멈추게 하고, 순간을 되새기게 하고, 잊힌 기억의 창을 열게 한다.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가게도 하고 지금-여기의 ‘현재’를 선명하게 하기도 한다. ‘미래’를 견디게 할 희망의 언어를 주기도 한다.
이러한 글은 읽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 글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오래 남는 글은 윤리적 감수성이 있다. 글이 시간이 지나도 가치 있는 이유는, 그 글이 자기만을 위해 쓰이지 않을 때다. 오래 남는 글은 언제나 타인을 의식한 글이다. 여기서 타인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고자 한 또 다른 존재를 뜻한다.
글은 윤리적 행위다. 글을 쓸 때, 단지 ‘쓰는 나’만이 아니라 ‘읽게 될 누군가’를 떠올리는 글이어야 한다. 진실이란 결국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글쓰기에서 태어난다. 타인을 향한 초조함을 끝까지 놓지 않은 글, 그런 글만이 오래 남는다. 이 초조함은 형식이 되고, 형식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결국 공적 유산이 된다.
또한 글의 영속성은 형식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형식이 허술하면 기억되지 않는다. 문장은 생각의 몸이다. 좋은 형식은 단순히 ‘문법적으로 잘 짜인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사유와 감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형식은 흐름을 만들어주고, 흐름은 리듬을 만들고, 리듬은 기억을 낳는다.
따라서 오래 남는 글은 좋은 생각 + 좋은 형식의 결합체이다. 그것이 시이든 수필이든 논문이든, 리듬이 없는 글은 독자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남기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견디기 위해서인가?
오래 남는 글이란, 견뎌낸 글이고,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글이다. 그러한 글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을 새롭게 내어주며 또 다른 존재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오래 남는 글에는 언제나 시간의 흔적, 사유의 밀도, 윤리적 형식, 기억의 구조가 있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간절한 예감이 있다. 시간을 넘긴 글이 아니라, 시간을 낳은 글만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