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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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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25. 2018

가을과 기억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_권대웅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떨어지는 빗방울에게도 기억이 있다

 

당신을 적셨던 사랑

아프지만 아름답게 생포했던 눈물들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 건널목에서

비 맞고 서 있던 청춘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마다


기우뚱 하늘 한구석이 무너지고

그 길로 젖은 불빛들이 부푼다


흐린 주점에서 찢었던 편지들이

창문 타자기의 활자처럼 찍히는


빗방울의 사연을 듣다보면

모든 사랑의 영혼은 얼룩져 있다


비가 그치고

가슴이 젖었던 것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몸으로 젖었던 것들만이 잊힐 뿐이다

밤거리를 맨몸으로 서성거리는 빗방울들


사랑이 떠나간 정거장과 쇼윈도의 창문과

나무들의 어깨 위로


구름과 놀던 기억들이 떨어진다

국화 허리 같은 당신이 떨어진다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권대웅




가을에 대한 기억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

떨어지는 기억에도 가을이 있다


가을을 적셨던 이별

씁쓸하지만 아름다웠던 가을


빨간불로 바뀌지 않는 파란불에서

쌓여있던 기억들이 가을나뭇잎처럼 우루루 떨어질 때마다


기울어진 도로의 한쪽면 위부분부터

가을도 우두둑 떨어져 내린다


기억에 남겨진 가을의 시를 읊어보다보면

모든 기억은 이별로 얼룩져있다


바람이 그치고 남아있는 잎새는

쉽싸리 떨어지지 않는다


가을에 접어든 낙엽들만이 떨어질 뿐이다

지나가는 석양들녘을 온몸으로 붙잡는 잎새들


기억이 떠나려는 가을의 도로 위 정거장과

신호등위 낙엽들 위로


당신과 이별한 기억이 떨어진다

가을같은 당신의 기억이 떨어진다


가을에 대한 기억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

도로위에 이별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


당신이 떠나간 정류장에

가을이 이별과 함께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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