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이 일어나고 지식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면서 복잡하지만 유연하고 인사이트가 넘치는 구조와 문화가 만들어 진다. 사람들은 '혁신'이라는 단어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도록 설계된 사회에서 가끔 창의성? 그게 뭔데?라면서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의적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창의성은 제한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아무도 선을 긋지 않은 흰 도화지에 자신이 마음대로 곡선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창의적이라는 말이다.
오늘은 문득, 세바시 강연을 듣다가 창의성은 어떻게 나오게 되지? 이런 고민을 해 보다가 끄적이게 되었다. 창의성에 대한 정의보다는 창의성이 나오게 되는 과정이나 맥락을 한 번 들춰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과거의 철학자들은 어느시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싸움을 시작했다. 실체가 중요하다는 특수성과 이론이 중하다는 보편성이 싸우면서 서로 진영을 나누고 진리대결을 펼쳤다. 이론을 중시하는 사람은 보통 학자가 되었고, 실체를 중시하는 사람은 상인이되거나 공학자가 되어서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 두가지를 연결해 보기 시작했다. 이론이 실체를 만들고 실체가 이론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런 사람들을 17세기 초기에는 낭만주의자라고 불렀다. 보이지 않은 것과 보이는 것을 연결하는 사람. 이러한 17세기 초기 낭만주의자들 중에서도 지금까지 유명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헤겔'이었다. 헤결은 정신과 실제의 사물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개념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 헤겔의 구체적 보편성
해결의 정신현상학은 정신에서 부터 시작된 생각의 흐름이 실제에 닿아서 '실체'가 된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실체에는 언제나 '구체적 보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헤겔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미친놈~'소리를 여러번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헤겔이 이룩한 정신의 구조와 실제의 구조의 연결점들이 드러나면서 헤겔의 이론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모두 아우르는 메타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구체적 보편성이란 가장 작은 사례의 이 세상에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지식이 들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얼마나 작은 단위에서 발견되었는가에서 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얼마나 큰 단위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위대한 이론이 되거나, 아니면 타당성이나 적용가능성이 적은 이론이 되었다. 바로 이지점에서 '창의성'이 등장한다. 창의서이란 바로 우리의 가장 조그마한 일상에서 '구체적 보편성'을 찾는 작업니다. 모두가 으레 그렇다고 느낌 것에 숨어 있는 '구체적 보편성'을 발견해서 그것을 극대화해서 사회 전체로 적용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혁신을 넘어 국가혁신까지도 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보편적인 것에서 구체성을 찾는 것은 쉽다. 반대가 창의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3. 낯설게 보기_브르톨트 브레히트
창의성에 목마른 사람들이 보통 하는 일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인데, 자신이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창의성이 목적이 아니라서 창의적이게 된다. '낯설게 보기'가 핵심이다. 낯설게 보기의 장인은 독일의 브르톨트 브레히트라는 시인이지 철학자이다. 브레히트는 가장 중심에 무엇하나 빠질 수 없는 핵심을 가지고 저 멀리 바깥으로 가지고 가서 그것이 바깥에서도 중심일지를 비교해보고 다시 그것을 안으로 가지고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동이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노동운동의 핵심이라면, 그것이 삶의 가장 말미의 '설거지'에서도 노동운동이라고 할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노동운동을 외치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이야기이지만, 만약 설거지도 노동운동이라면 우리는 모두가 노동운동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설거지에서 노동운동을 발견하는 이른바 '구체적 보편성'은 설거지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노동운동가'로 만들 수 있는 혁신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도의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를 들 수 있다. 신지학으로 유명한 당신의 특정 인도의 종교를 배격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출처와 배경을 제외하고, 오직 지금 내 안에 들어오는 것들로만 새롭게 보기 시작한 '부정하는 생각법'의 나무르티는 '사물을 가만히 직시하기 시작한다면 관성은 드디어 멈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직시하고 관찰하고 시간의 흐름에 맞게 돌아가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않는 생각의 습관에서 나무르티는 그 동안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자신이 속한 종교의 흐름을 멈추고 위대한 진리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직시하고 마주하고, 응시하고, 멈추어 보는 작업들에서 가장 사소하지만 가장 위대한 것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 부정하는 사고법에서 창의성은 시작된다
사물을 가만히 직시하기 시작한다면 관성은 드디어 멈춘다
5. 로마 시대의 학자들
옛날 로마시대의 법학자들은 기억의 궁전이라는 방법으로 로마법대전을 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궁전을 하나 짓고, 그 궁전들 안에 방을 여러개 만든 다음 그 방의 구조물에 숫자나 단어를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배치하게 되면 몇만개의 단어라도 외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창의성에 도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가장 작은 모형이 가장 큰 모형과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는 것을 프랙탈이라고 한다. 작은 삼각형은 몇십만개를 붙여도 삼각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랙탈은 건축에서부터 기하학, 수학, 유체역학, 천문학까지 모든 영역에서 사용된다. 기억의 궁전의 방법과 프랙탈의 방법이 만나면, 가장 작은 궁전을 원의 중앙에 넣고 그것보다 큰 건물들을 차례대로 겹쳐서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면 크기에 따라서 원 중심으로 점점 큰 궁전들이 겹쳐서 배치되고, 기억의 궁전들이 한칸씩 움직이면서 중앙에서부터 바깥까지의 배열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궁전이든 한번 오른쪽으로 시계를 돌리듯이 돌리면, 배치와 배열이 달라져서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된다. 바로 창의적인 것들이 무한대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작은 궁전에서부터 가장 큰 궁전까지 중심을 모으고 태엽을 돌리듯이 돌리면 새로운 배열들이 생성된다.
6. 스티브 잡스_connecting the dots
창의성 하면 머니머니 해도 스티브잡스다. 스티브잡스는 매우 빈번히 '창의성은 서로 다른 점들이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야만 '서술문'이 된다. 예를 들면 '연필은 종이에 글씨를 쓰는 도구'라는 것에서 보면 '연필-종이-글씨'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중간에 종이를 다른 것으로 바꾸면 새로운 창의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펜슬이 발명되었다.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패드에 쓰도록 된 것이다. 이미 있던 것들, 그 사이의 연결의 바꿈으로써 새로운 창의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0. 나오기_하찮은 것들을 위대하고 장엄하게
간략하게 알아보았지만, 창의력은 결국 있던 것들의 새로운 조합이거나, 생각하는 방식의 변화, 가장 작은 단위에서의 관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이너들 중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많이 본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이다. 최대한 많이 본 사람이 더 많은 연결과 배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영감을 얻기 위해서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자역학의 단위까지 열린마당에서 이제는 좀 더 세밀한 사고와 관찰,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창의성을 만드는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가장 작은 사람에게 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한 것인 것처럼,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지가 나오는 것이겠다.
하찮은 것들을 위대하고 장엄하게 바라보기 위해서 오늘도 이전의 편견을 부정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내며, 기억의 궁전에서 낯설게 보기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